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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Sep 12. 2020

4-2. 기나긴 터널의 조명

기나긴 터널 속, 그 조명

그래도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그래도 못 버틸 것 같던 기나긴 터널에 밝은 조명이 되어주던 사람들과 말이 있다. 내게 조명이 되었던 경험을 읽고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죽어가는 시체 같은 모습으로 처음 정신과에 간 나에게


 “ㅇㅇ씨는 정말 의지력있고 똑똑한 환자예요. 의심이 든다면 계속 물어봐도 돼요 계속 대답해줄게요.”


라고 하셨던 나의 첫 정신과 선생님.

처음 만났을 때는 감정을 잘 보이시지 않는 타입 같았는데 점점 만날수록 “선글라스가 예뻐요”, “검은색 좋아하나봐요” 같은 스몰 톡으로 정신과에 대한 긴장감을 풀어주셨다. 어느 날 사회의 성차별에 분노를 쏟아냈는데 선생님은 정말 의사의 입장에서 내 상태에 대한 진단만 했다. 같은 젊은 여성으로서 공감을 해주실 줄 알았는데 다소 차갑고 기계적인 모습에 못내 서운했다.


하지만 몇 주 뒤 선생님은 이 병원서 오늘 진료가 마지막이라며 작심이라도 한 듯 숨겨왔던 감정과 생각을 털어놓으셨다. 나를 만나 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같은 젊은 여성으로 공감가는 바가 컸다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자며 “젊은 여성 파이팅!”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인데.."라는 말과 함께 악수를 청하셨다.


나의 마음을 깊이 공감해주는 사람과의 악수는 어떤 약보다 효과적이다.


이별 통보를 받은 후 갑자기 전화했는데도 바로 나와주었던 친구가 있었다. 카페에서 밥도 안 먹고 7시간 내리 울던 걸 다 들어주고, 혹시 대만 가고 싶으면 비행기값에 보태라며 현금 10만원을 가방에 넣은 친구. 세상이 다 나를 버린 것 같았는데.. 정말로 정말로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몇 년간의 취준과 불합격, 정말 애가 닳던 사랑의 배신 등 모든 상황을 다 들어주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짐바브웨로 이민 간 친구였는데 진심으로 너무 힘들면 짐바브웨에 오라고, 언니를 위해서라면 티켓도 끊어줄 수 있다고, 이런 옵션도 있다는 걸 참고하라고 말해주었다.


이런 옵션도 있다는 걸 참고하라는 말은 지금도 가끔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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