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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Apr 03. 2021

네 마리 토끼

대학원 = 공부 + 과제 + 과제 + 과제

요즘 어떻게 지내?

     

누군가 물으면 만족스럽지 않다는 앞부분은 쏙 빼고 그럭저럭 지낼만하다고 답했다. 회사만 가면 죽어라 안 가던 시간이 주말에만 빨리 간다고도 했다. 그런 평소와 달리 3월은 겁날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평일에는 회사 업무와 평가준비 때문에 정신없고 화요일에는 대학원 수업을 듣고 나면 하루가 다 지나갔다. 가르쳐 주는 수업을 듣는 것과 알아서 공부하고 이해하는 건 생각보다 차이가 컸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조별과제에 매달리고, 주말은 쏟아지는 개별 과제를 처리했다. 그러고 나면 코앞에 월요일이 다가온다. 일도 해야 하고 그렇다고 공부를 놓을 수도 없어서 꾸역꾸역 해내는 한주, 한주가 지나 3월이 가고 있다.

     




출퇴근길에 길가에 혹은 골목에서 만나던 벚꽃은 비가 온 뒤로 빠르게 꽃잎을 털어냈다. 꽃, 봄 이런 무해한 녀석들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야속하게.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했으니 꽃구경은 못해도 마음은 만족감으로 채워질 줄 알았다. 근데, 하고 싶은 걸 한다고 행복이 곁에 머물진 않았다. 생각보다 담담하고, 서글프다. 사회초년생 시절처럼. 취업하기 전까지는 취업한 사람이 그렇게 부럽더니. 취업하고 나면 현실에 적응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어느새 손에서 빠져나가버린 것들이 너무 많아 아득해지던 그 때.

일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붙잡아야 했다. 오른손엔 회사라는 토끼를 왼손에는 공부를 잡았더니 글과 사람이라는 두 토끼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미안해. 더 붙잡을 손이 없어. 내 손은 오른손, 왼손이 다 거든.

 


     

정신분석학자들은 자기 능력의 한계를 아는 것이 성숙한 성인이라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한데 성숙하지 못한 나는 이 토끼도 저 토끼도 다 움켜쥐고 싶다. 돈을 위해 회사원 신분을 유지해야 하고, 지금 아니면 못할 공부도 하고 싶고, 친구 만나서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지속하고 싶고, 내 인생에 가장 크게 똬리를 튼 글도 계속 품고 싶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어떤 선택도 내리지 않고 미적댄다.

     

글 쓰고 공부만 하고 싶어. 일은 싫고, 놀고 싶어. 내 안의 심연은 자꾸만 욕심 부리라 말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의식은 그럴 수 없으니 타협하자 말한다. 글을 버려. 당장 네게 돈을 가져다주지도, 직업을 주지도, 인정을 주지도 않으니 버려야지. 의식은 모른다. 나라는 사람을 지탱하고 서있게 하는 뿌리는 ‘글’임을. 그래서 썼다. 너무너무 쓰고 싶어서, 일기로도 풀리지 않는 마음을 풀어내 나를 달래고 다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하여. 


그러나 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타협안에 고개 끄덕여야 한다는 걸. 그렇다면 회사를 놓을까, 글을 놓을까, 공부를 놓을까, 사람을 놓을까. 조금 더 아프고, 조금 덜 아프고의 차이일 뿐 내 손으로 무언가를 놓아버리는 일은 늘 아프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확실한 건, 두 가지를 놓고 내가 잡은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 나를 많이 바꾸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 알지 않는가. 편안함에 안주하는 대신 불확실함과 불편함에 나를 던질 때 더 자란다는 걸. 대체로 하고 싶은 건 늘 우리를 불확실함으로 내몬다. 나는, 자라볼 생각이다. 불확실하고 불편함이 가득한 세상의 이방인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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