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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쓰는 기자 Dec 17. 2020

프랜차이즈에서 머리를 디자인했다

프랜차이즈에 대한 단상


두 달 만에 미용실을 갔다. 내 더벅머리를 참다못한 아내가 예약을 해 놓은 곳이었다. 아내는 내가 안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전날, 무려 헤어 디자이너께서 내 머리를 손봐줄 거라며 꼭꼭 가라고 당부했다. 돈도 절반 정도 대신 내줬다. 길면 자르고 짧으면 기르는 식으로 머리를 손톱처럼 취급하던 내게 디자이너라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었지만 누군지 구경이나 하자 했다.


아내가 말한 디자이너는 비달 사순 ABC 컷을 수료한 분이었다. 다른 미용사들과 달리 수석실장이란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분에게 머리를 받으려면 2천 원을 더 내야 했다. 석박사급 인력이 학부 졸업생보다 인건비가 높은 것쯤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찜찜한 마음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나란 사람에게 머리는 큰돈 들여 관리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누가 잘라도 그게 그거 이기도 했고 소위 '머리발'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잘난 얼굴도 아니었다. 비달 사순 본인이 직접 집도 한다 해도 이런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누구를 만나도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하는 연애 회의론자의 시선으로 미용사 분들을 바라봤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막 가지는 않는다. 파마약 냄새가 코를 찌르거나 빨간색 타월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어수선한 곳, 동네 사랑방처럼 왁자지껄한 곳은 잘 가지 않게 된다. 청록색 빛바랜 소파에 우먼센스나 결혼생활 같은 잡지가 널브러져 있는 곳도 피한다. 이발비가 너무 싸거나 개인이 혼자 운영하는 곳도 되도록이면 안 가려고 한다. 퀴퀴한 인테리어는 둘째 치더라고 실력 편차가 너무 큰 것 같기 때문이다. 경험상 잘 자르시는 분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눈 떠보면 다른 사람을(나쁜 쪽으로) 만들어 놨다.   


그래서 그런지 막 유명하지는 않아도 누구나 알만한 중저가 프랜차이즈 미용실만 찾게 된다. 경험상 그런 곳들은 최소한의 퀄리티와 깔끔한 환경을 보장했다.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다 보니, 더 그렇게 되어 간다. 숨겨진 고수를 찾기보다 알려진 중수를 찾는 것이 하수를 피하는 나만의 공식으로 굳어졌다.


따지고 보면 미용실만 그런 게 아니다. 밥을 사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 문구류를 살 때 등등 뭐만 필요하면 프랜차이즈를 떠올린다. 술 먹은 다음 날엔 큰 맘 할머니 순댓국, 컵라면과 김밥 따위로 대충 한 끼 때울 땐 CU, 취재하다 갈 곳이 없으면 스타벅스, 건전지 같은 소모품은 다이소. 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이런 곳들은 전국 어디에 가도 균일한 맛과 서비스, 제법 쓸만한 제품,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응대를 받을 수 있어 좋다. 하지만 한편으론 왠지 무색무취의 사람이 돼가는 것 같아 씁쓸해지도 한다.


나는 지성인으로서 프랜차이즈가 많아지는 것에 반대한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선 점주의 개성과 지혜, 노하우 같은 능력이 발휘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가 늘어날수록 낭비되는 재능도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점주 또한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자기 사업을 벌이기보다 프랜차이즈를 선택하는 것은 그쪽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리라. 소비자인 내가 프랜차이즈를 선호하 듯 말이다.


머리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이쁘게 나왔다. 눈 떠 보니 거울 속의 내가 멀끔해진 얼굴로 수줍게 앉아 있었다. 스스로 말하기 참 부끄럽지만 제법 잘생겨 보였다. 들뜬 마음에 셀카를 신나게 찍었다. 미용사 분이 아니 디자이너가 뭐에 쓰려고 사진을 찍냐고 물으셨다. 블로그에 올릴 거라고 했다. 프랜차이즈에도 숨은 고수가 있다는 걸, 낭비되지 않은 재능도 있다는 걸 지금 알게 됐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머리가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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