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기에 발목잡힐 때
깜깜한 한밤중, 아기침대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숨이 막힐 것 같으니 살려달라는 절규다. 그 소리를 들으면 나는 한창 꿈을 꾸다가도 뚝 잘라먹고 현실로 소환된다. 꿈의 마지막 장면을 얼떨떨하게 재생하며 아기방으로 살금살금 다가간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아기는 엎드린 채 고개를 들고 울고 있다. 낑낑거리며.
아기가 뒤집기를 마스터한 건 100일이 지나고서였다. 엉덩이를 번쩍 들어 옆으로 눕더니 뒤집고, 팔을 빼고 고개를 드는 일련의 동작들을 해내면서 아기는 뿌듯해했다. 뒤집고 나면 나 보세요!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이고 우리 아기 잘했네, 하면서 머리카락도 별로 없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아기는 좋아서 바둥거렸다. 나 뒤집었다고요! 뒤집었어요! 뒤집기를 마스터한 아기는 뒤집기를 자랑하며 항상 뒤집고 논다. 엎드려서 책도 보고, 앞으로 기어보기 위해 자벌레처럼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꿈틀거리기도 한다. 누워만 지내던 신생아 시기를 벗어나 이제 정말 '아기'가 되었다.
그런데 요즘, 이 뒤집기가 아기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루종일 뒤집기를 하다보니 몸에 배었는지 곤히 자다가도 자꾸 뒤집기를 시도한다. 뒤집고 나서 엎드린채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계속 자면 좋으련만, 아기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아기가 뒤집을 줄만 알고 다시 되집는 방법을 모른다는 데 있다. 어른이 다가와 다시 되집어줄 때 까지는 엎드린 채 그저 우는 수 밖에 없다. 수면의 질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뒤집기를 연마하기 전까진 쌔근쌔근 통잠을 잘 자던 아기가 뒤집고 나서부터는 새벽에 몇 번씩이나 깨서 운다. 덩달아 보호자인 내 수면시간도 조각조각 토막난다. 밤에 여러 번 뒤집어서 깬 날은, 아기도 눈 밑이 까맸다(아기도 피곤하면 다크써클이 생긴다). 밤에도 낮에도 아기는 엎드린 채 피곤해져 운다. 되집기를 몇 번 연습시켜봤지만 아직 멀었다.
아기가 처음 뒤집던 날을 기억한다. 고개를 들고 팔을 빼는 매 동작에 소리치며 환호했다. 아기가 할 줄 아는 게 생겼다는 게 마냥 기쁘고 신기했다. 그런데 요즘 뒤집기의 덫에 빠진 아기를 볼 때면, 고개를 쳐박고 엉엉 우는 모습에서 나 자신의 일부가 보이는 것만 같다. 내게도 작은 시작과 성취들이 있었다. 아주 잘 하진 못하지만 적당히 잘 하는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그 적당한 성취, 고만고만한 능력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이를테면 글이 그렇다. 뛰어나진 못해도 적당히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운좋게 책을 내고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줄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아기로 치면 뒤집기를 막 시작한 셈이다. 그런데 그 뒤집기 이후로부터, 나는 가끔 좋은 글을 보면 탁 하고 숨이 막힌다. 좋은 책을 보면 독자로 그저 행복하고 즐거웠는데 이제는 막막해진다.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하고 책을 내기 전까진 없던 증상이다. 뒤집기 전에는 몰랐던 답답함이다. 아주 작은 성취지만 그 성취가 발목을 잡는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아예 아무 것도 하지 못할 때는 눕혀 놓으면 눕혀 놓은대로 통잠을 자다가 이젠 밤잠을 설치며 울기 시작한 아기처럼.
아기는 지금도 뒤집고서 낑낑대며 나를 부른다. 엎드린 채 오래 놀아 목이 아픈 모양이다. 오늘도 밤잠을 설치며 뒤집어진 채 울테고 나는 아기를 뒤집느라 또 선잠을 잘 것이다. 뒤집어서 오히려 힘들어진 이 일상은 꽤 지속될지도 모른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 되집기가 완성될 때까진. 아기는 하루종일 엎드린 채 되돌아가지 못해 힘들 것이고 나는 탁월한 글을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질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뒤집기 시작한 아기도 글을 쓰기 시작한 나에게도. 그 날이 올 때까진 계속 뒤집고 또 뒤집어보는 수밖에.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