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이후 건망증, 나만 겪는 거 아니지?
출산 이후 깜빡깜빡한다는 이들이 많다. 과학적으로는 이렇게 설명된단다.
1) 고된 육아(아기의 수유 텀이 짧아 통잠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아이가 자야 비로소 집안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음.)로 잠이 부족해져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된다.
2) 출산에 이르기까지 최고조로 분비되던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이 출산 이후 급감하게 되는데, 에스트로겐이 집중력에도 연관이 있어 일시적으로 기억력 감퇴 증상을 겪을 수 있다.
분명 과학자들은 일시적이라는데, 나는 출산 후 6개월이 돼가도 애가 아닌, 뇌를 낳은 것 같다는 느낌으로 살고 있다.
일단 어휘량이 대폭 줄었다. 어감은 머릿속을 맴도는데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내 말이 간결하지 않고 중언부언한다는 느낌도 든다. 적절한 어휘를 생각해내지 못하니 내 생각을 전하려 비슷한 말을 반복할 수밖에.
또 내가 계획했던 일을 자꾸 잊는다. 남들은 꼼꼼한 줄 알지만 알고 보면 굉장히 덤벙거리는 편인데, 출산 이후 덤벙거림이 더 심해졌고 기억력도 떨어졌다. 출산 영향일까 40대에 접어든 나이의 영향이 더 큰 걸까, 가늠하노라면 한층 더 서글퍼진달까.
이러다 보니 복직 이후의 직장 생활이 더욱 걱정스럽다. 데일리 기자의 뇌는 매일매일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데 최적화돼야 하는데 전반적으로 뇌가 녹슨 데다 용량마저 줄어든 느낌이기 때문이다.
4년 전 첫째 아이를 돌까지 키우고 복직한 직후, 회사일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를 신경 써야 한다는 게 너무 어려웠다. 지금까지 하나의 방으로 존재했던 내 머릿속을 반으로 갈라 1번 방에 회삿일을 시키고 2번 방에는 육아를 시키는데, 24시간 내내 1*2번 방을 풀가동해도 일과 육아 모두 기존 결과물에 못 미쳐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내가 집에서 애만 보는 동안 나를 제외한 모든 동료들이 나보다 발전하고 있었을 거란 생각은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이어져 자존감 낮은 못난이 생활을 몇 달 했었다.
이제 둘째까지 생겼으니 앞으론 2번 방을 2-1과 2-2 방으로 나누어야 할 텐데 1번 방의 면적을 좀 줄이는 식으로 조정할지, 2번 방을 그대로 반으로 나누게 될지 모르겠다. 엄마인 이정은은 2번 방 평수를 좀 늘리고 싶지만 그럴 경우 기자 이정은이 받을 스트레스가 너무 커, 결국 아이들에게 짜증만 더 낼 것 같다는 게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시간이 갈수록 동동거림을 줄이고 육아도 일도 이전보다 '더 적당히' 하지 않으면 내가 남아나지 않을 거란 서글픈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