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네 Sep 11. 2023

김훈의 <공터에서>를 읽고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어 죄스러운 마음이지만, 삶이 힘들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면 좋겠다. 1920년대의 중국서부터 80년대의 한국 이야기가 담겨있다. 작가 김훈의 자전적 이야기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흥남 부두의 그날도, 똥물이 떠다니는 청계천과 한강, 그리고 핏물 섞인 낙동강 하구의 빨래터도 머리에 떠오른 장면들을 쉽게 흩어지지 못하게 한다.



전쟁을 경험하고 참전했던 주인공의 아버지 마동수와 장남 마장세를 보며, 집에서는 죽은 줄 알고 첫 번째 아내를 되돌려보냈다는 나의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 육칠 년을 우리와 함께 살다 말년에는 식사를 위해 방 밖을 나오는 것밖에는 하지 않았던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용변 처리까지 돌봤던 나의 아버지. 마동수의 뒤를 닦으며 아버지를 미워했던 둘째 마차세와 마동수와 놀랍도록 닮은 마장세의 어린 시절에 마음 아파하며, 어디일지 그들과 많이 닮아있을 법한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서 더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독서 모임 선정 도서로 급히 읽어서 매우 아쉬웠다. 못해도 일주일은 꼭 끌어안고 음미하며, 생각나는 이야기들도 쓰며 읽고 싶은 책이다. 최근에는 파친코와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까지 근현대사 이야기를 접했는데 아무리 더 읽어도 싫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독서 모임에서 이런 좋은 책을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덧. ‘공터에서’라는 제목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제목처럼 소설의 중간에 지나가듯 적혀있었다. 임팩트없는 제목이라 호불호가 있겠지만, 나는 싱아처럼 ‘공터’가 이야기의 중간에 무심히 자리하면서도 빨래터 부근이라는 그 시대의 함축적인 의미와 인물들의 상황을 한꺼번에 연상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작가는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었고, ‘오랫동안 내 속에 서식하면서 저희들끼리 서로 부딪치고 싸웠다. 사소한 것들의 싸움을 말리기가 더욱 힘들었다’라고 했는데 ‘공터에서’ 라는 제목에서 작가의 ‘기억과 인상들이 이제는 내 속에서 소멸하기를 바란다’는 바람이 느껴지는 듯해 더욱 여운이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재, 그 후로만 열리는 아버지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