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네 Dec 12. 2023

제사와 돼지국밥

돼지국밥 만드는 법을 배웠다

아빠 없이 맞는 세 번째 시사(時祀). 제를 지내는 동생도, 엄마와 동생 둘만 지내게 하기엔 마음 쓰이는 나도 알아서 일정 맞춰 본가에 내려가기를 삼 년째. 번거롭기도 하지만 헤어질 무렵엔 그 덕에 얼굴 본 게 아닌가 싶어 애틋함이 핀다.


원래 산에서 지내는 제사라 했다. 해서 비교적 준비할 게 많지 않다고 했지만, 전날 저녁부터 시작된 엄마의 음식 준비는 당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도 제사상을 펴고 준비된 음식을 제기에 올려 하나씩 제사상까지 담아냈다. 새벽까지 일하느라 늦게 잔 동생을 그제야 깨웠다.



위폐 세 개가 나란히 상에 올랐다. 전에 써뒀다는 지방이 붙여졌다. 알 수 없는 한자들 가운데 하나씩 자리한 ‘三, 四, 五’가 눈에 띄었다. 동생에서부터 3, 4, 5대인 증조, 고조, 현조의 조상이었다. 5대까지 지내는 거였구나, 나는 새삼스레 관심이 갔다. 나의 고조와 현조는 1800년대에 살던 사람이겠구나. 여느 교과서의 흑백 인물 사진처럼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한 모습일까, 어떤 얼굴을 한 할머니였을까.


동생은 나무젓가락을 이곳저곳 음식에 놓으며, 혼자 능숙하게 절도 하고 술도 올렸다. 생각보다 일찍 끝이 났다. 아빠가 하던 것처럼 동생은 대접에 모아뒀던 술을 깔대기를 끼워 다시 술병에 모았다. 어렸을 적부터 아빠가 자기를 데리고 조상들 산소 이곳저곳을 다니며 제를 지냈다며, 말끝에는 ‘누나는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어떤 산소는 기억도 안날만큼 아주 깊숙이 있어서 혼자선 찾아갈 수도 없다 했고, 어떤 산소는 담벼락 아래에 있다 했다. 통태전 하나를 집어 술 한 모금을 홀짝였다. 동태전이 기가 막히다며 조용히 젓가락질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빠였다.


엄마는 제사상에 올린 수육을 국에다 끓여 돼지국밥을 만들어왔다. 어떻게 집에서도 돼지국밥을 만들 수 있는지 다시금 감탄하며 우리는 이른 아침밥을 배부르게 싹 비웠다. 엄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동생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보고 돼지국밥 만드는 법을 알아두라고 했다, 나중에 엄마가 없으면 이게 엄청 생각날 거라며. 그러면 나중에 우리 집에 돼지국밥을 먹으러 오겠다는 거다. 아빠가 없어져서 갑자기 철이 들었던 동생은 벌써 엄마 없는 날부터 걱정하는 모양이다. 어쩐지 일주일에 몇 번씩 안 했던 전화를 엄마한테 해오고 있다는 동생은 아빠한테 못다 한 마음을 엄마에게는 되풀이하지 않고 싶은가 보다.  


동생을 바래다주러 공항 가는 길엔 다가오는 설 연휴엔 어떻게 일정을 맞출지 얘기가 나왔다. 이전처럼 오래 다녀갈 수 없다는 동생의 말에 앞으로 차차 엄마가 서울로 가는 것도 고려해 보자는 얘기가 엄마 입에서 나왔다. 몇 주 전엔 내가 주도해서 같은 얘기를 했을 때 엄마는 화를 냈었는데 그간 생각이 많았나 보다. 군말 없이 여러 제사를 지내러 오가는 동생의 부담을 엄마도 줄이려고 꾸준히 제사를 줄여나가고 있는 터였다. 우리 대까지만 이렇게 제사 지내는 게 가능하지 그 후로는 어떻게 하겠느냐 했다. 동생도 나도 말은 안 하지만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집에 올 땐 남은 수육을 한가득 받아왔다. 레시피도 전수받았다. 날도 흐린데 점심으론 돼지국밥을 만들어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락 반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