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세탁

by 하노

졸업도 하지 못하고 중간에 학업을 포기하고 자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공이 건축이어서였을까?

나는 건축 회사에서 일을 했다. 입사 당시의 회사 규모는 작았는데 젊은 직원들이 똘똘 뭉쳐 10배 이상의 규모로 키워냈다. 창호 제작 기술과 시공 기술을 배우고 저돌적인 영업을 해나갔다. 당시 나는 운전하고 돌아다니다 건물을 지으려 설치된 시스템 비계 즉 '아시바'만 보이면 차를 세우고 현장으로 들었갔다.

어려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들 눈치를 많이 보고 자라서 인지 한눈에 누가 현장 소장인지 알 수 있었다.

현장 소장에게 찾아가 항상 뒷좌석에 싣고 다니던 영업자료를 건네며 회사가 가지고 있는 경쟁력을 어필했다.

이런 나의 영업 방식이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데 적지 않은 공을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일이 좋았다. 성과가 눈에 보이고, 성장하는 회사의 규모가 매년 커지는 것을 보며 성취감에 빠져 살았다. 당시의 건설시장도 호황이었다. 그 덕에 아내와 결혼도 할 수 있었고 29살에 내 집마련도 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창호를 제작하는 공장에서도 일을 하고, 시공을 하는 현장에서도 일을 하고, 돌아다니며 영업도 했다. 담당했던 현장이 지방에 있을 때면 오전 6시에 집을 나와 새벽 1,2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신혼이던 나는 아침에 잠을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출근해서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며 퇴근했다.

신혼 초기 아내는 늘 이게 무슨 신혼이냐며 집에 혼자 있어 외롭다며 투정을 피웠다.

그래서 결혼선물로 지인에게 분양받은 강아지 빵댕이와, 우연처럼 우리에게 찾아온 유기견 식빵이 두 마리를 키우며 살았다. 하지만 나는 맡은 현장이 많다 보니 주말에도 현장으로 가 시공을 해야 했다. 영업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었다. 내 밑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하나 둘 도망을 갔다. 일의 강도가 너무 힘들지만 쉴 틈이 없었다.

내 몸을 갈아서 회사를 키웠지만 결국 건설경기가 죽으며 기세가 꺾였다.


그 시기에 형과 함께 창업을 했다. 셀프 빨래방이었다. 처음의 의도는 무인점포로 부가적인 수입을 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형도 나도 영업을 참 잘했다.

손님이 이용하지 않는 시간대에 멈춰있는 세탁기를 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근처 헬스장이며 목욕탕 미용실 할 것 없이 영업을 했다. 그리고 수거를 해오고 세탁해서 배달을 해줬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세탁공장까지 차리며 커지게 되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듯 일상도 매일 똑같이 돌아갔다. 표준세탁으로.

취직을 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어떤 정해진 패턴의 표준값 안에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나는 참 힘들었다.

평소 말이 많아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했다. 그래서 20대 초반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1년간 살았던 호주에서도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영어가 빨리 늘었다.

뭔가 나에게 입력이 되면 어떤 형태로든 출력을 해야 했다. 그것이 내가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이유였던 것 같다. 어떤 입력 값에 영감을 얻으면 노래로 만들고는 했다. 그 노래가 출력이 되어 내 안은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 출력은 멈췄다.


일상을 사는 이유를 아내와 아이에게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 사람인가 보다. 생활이 안정이 되고 삶이 좀 더 여유가 생겨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창작을 통해 해소하고 싶은 갈증이 있었다.

그렇게 아이가 생기고 멈춘 출력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더 자유롭게 원 없이 토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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