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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래빗 Jul 07. 2023

예민한 강아지와 산다는 것

나의 퇴사일기, D+156

유기견을 입양한 지 이제 한 달 반이 되어간다. 우리 강아지는 참 겁이 많고 소심하다. 세탁기나 식기세척기 돌아가는 소리, 밖에서 택배 기사님이 택배 옮기는 소리 등 여러 생활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어떨 때는 정체 모를 소리에 소심하게 으르렁 거리기도 한다.


그런 주제(?)에 호기심은 또 많아서 뭐든지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냄새를 맡아야지만 직성이 풀린다. 자기보다 큰 강아지들을 보면 다리 사이로 꼬리를 바짝 숨긴다. 그러면서도 그 강아지가 궁금해서 냄새를 킁킁 맡으러 조심스레 다가가 본다. 겁이 많은 강아지 치고는 용감하다.


강아지 친구를 만나도 인사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눈치이다. 자기는 실컷 다른 강아지한테 얼굴을 들이대서 냄새를 맡다가도 정작 그 친구가 냄새를 맡으려 하면 자기 엉덩이를 뒤로 감추고 폴짝 뛰며 도망간다.


사람도 마냥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갑자기 다가오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내 지인들에게도 쉽게 다가가지 않는다. 사람과도 친해지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그런 아이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용감했다가 쫄보였다가를 반복한다. 며칠 동안 집 안에 가만히 있는 사물 옆을 잘 지나가다도 쫄보모드가 되는 순간 그 옆을 지나가질 못한다. 경계를 하기 시작하면 이름을 불러도 쳐다보질 않는다.




하루 종일 강아지와 같이 있다 보면 이 아이가 어린 강아지일 때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이따금씩 궁금해진다. 분명 사회화를 거쳐야 하는 생후 3개월경까지 다양한 사람, 장소, 소리 등에 대한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내가 이 아이를 처음부터 키웠더라면 어땠을까,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예민한 강아지와 살다 보니 나도 덩달아 예민해지는 기분이다. 무심하게 넘겨야지 하다가도 어떨 때는 왜 그러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하기도 하다. 하루종일 이 아이의 컨디션이 어떤지, 뭘 또 경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신경 쓰다 보면 나도 같이 정체 모를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강아지가 보고 듣는 세상을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없기에 답답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아이가 겪은 고통을 생각하니 애잔하다. 네가 무서워하는 세상이 사실은 좋은 세상이라고, 너에겐 든든한 보호자가 있다고 인식시켜주고 싶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좋은 보호자가 되고 싶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마 좋은 보호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런 것 같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간 이 아이도 우리 마음을 알아주겠거니 생각하며 하루하루에 오늘도 최선을 다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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