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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망 Oct 07. 2023

다시는 오래 쉬지 않겠습니다

12일의 행복은 엄청난 용기를 담보로 했다

솔직히, 달콤했던 12일의 행복


유난히 체육관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무려 12일 만에 체육관에 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하루를 쉴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다리가 아파서 쉬고, 그다음 날은 약속이 생겨서, 그다음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 핑계를 하나둘 꺼내봤더니 체육관에 가지 않아야 할 이유는 넘쳐났다.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무거웠지만 몸은 너무나 편안했던 시간이 지나고 문득 늘 욱신거리던 근육통이 느껴지지 않아 날짜를 세어보니, 무려 12일 동안 체육관에 가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몇 번이나 다시 살펴보아도 1주일 하고도 5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12라는 숫자가 가슴속에 쿵하고 박혔다.


죽을 만큼 고생하며 끌어올린 체력이 다시 바닥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아닌 확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겁도 없이 체육관 문을 밀고 들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모르는 것도 죄라면 죄니까, 감당하면 된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특히 몸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고통을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경험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비유하자면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이 평생 시달린다는 재입대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 비현실적인 상황이 나에게는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어쨌든, 여태 해왔던 것들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체육관에 다시 간다는 것은 처음 체육관의 문을 열 때보다 두 배 이상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최선이 아니다


집에서 체육관까지 걸어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아니, 사실은 한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냥 이대로 도망칠까?' 사실 도망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체육관에서 관장님이 시간에 맞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며, 당장 집에 돌아가도 나를 책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그저 이대로 방향을 틀어 다시 집으로 가서 편안한 침대에 누우면 해결될 일이었다. 이렇게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체육관까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왔던 길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도망치겠다는 것은 당장 상황을 모면하기 위함이 아닌, 지금껏 애써왔던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겠다는 의미와 같다는 것을 스스로 가장 잘 알았기 때문이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침대에 눕는 것은 내가 가진 선택지 중에서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살아오며 겪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결코 최선의 정답일 수 없다는 것을.


사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고민하며 보냈던 시간은, 결국 결단을 위한 시간이었을 뿐이다. 그날따라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걸려 평소보다 오랜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면서 어쩌면, 내 체력이 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극도의 불안감에 뇌가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쨌든 집에서 체육관까지 걷는 15분 동안의 진정할 수 있는 시간 덕분에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이 용기였든, 스스로를 속인 거짓말이었든 일단 들어가는 결단을 내렸으니 다시 나오려면 이 상황에 최선을 다해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다. 호기롭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코치님이 씨익 웃으며 "오랜만에 뵙네요"라고 말씀하시기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긴 했지만 말이다.


다시는 오래 쉬지 않겠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 처참했다. 평소라면 숨이 넘어갈 것 같기는 해도, 주어진 운동을 끝까지 해내고 마무리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올라왔었는데 오늘은 총 3세트의 운동 중에 1세트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초주검이 되었다. 말 그대로 숨이 턱 막히고 다리가 풀려버린 것이다. 이 느낌은 분명 처음 체육관에 들어섰던 그날의 향수다. 내 몸이 내 뜻대로 제어되지 않는 무기력한 느낌.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어서 오랜만에 부끄러움도 모르고 바닥에 찰싹 붙어서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호흡을 견디기 위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12일 사이에 회복하는 법을 잊어버린 내 비루한 체력을 원망했다.


회복이 늦어져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시간이 잦아지니 당연히 운동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평소라면 1시간이면 충분히 끝내야 할 운동을 평소보다 더 자주, 오래 쉬면서 진행 하다 보니 2시간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운동이 끝나게 되었다. 모든 운동을 끝낸 뒤, 좀처럼 호흡이 돌아오지 않아 구석에 쓰러져 있는데 코치님이 다가오셔서 "그래도 완전히 처음보다는 좀 낫죠? 어쨌든 힘들게 쌓아온 것은 배신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오래 쉬지 마세요."라며 어깨를 주물러 주셨다.


그러고 보니 첫 수업 시간의 나는 30분도 버티지 못했었다. 사람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에 더 민감해한다더니, 가장 좋았었던 내 모습을 현재와 비교하면서 약해졌다고만 생각했지 처음 시작했을 때의 내 모습은 잊고 있었다. 다시 기운이 났다. 벽에 기대 숨을 고르면서도 모든 것이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눈치도 없이 떨리는 허벅지를 붙잡고는 일어나는데 30초나 걸렸다. 나의 의지로 도망치지 않고 싸워서 이기지는 못했어도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견뎌낸, 나의 가장 중요한 일과를 마치고 안전한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체육관 문을 열고 나가며 코치님께 전한 인사는 늘 하던 '수고하셨습니다'가 아닌, '다시는 오래 쉬지 않겠습니다'라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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