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원 Nov 13. 2024

K장녀는 마우이가 아프다

애니메이션 <모아나>

우리는 때로 거울을 보듯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마우이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그의 눈빛에서 너무나 낯익은 마음과 슬픔을 보았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했던 그의 모습은 나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우이는 자신감 넘치는 동시에 거만하고 때로는 오만함마저 느껴지는 인물입니다. 마우이의 상징적인 아이템인 마법 갈고리는 그가 여러 모습의 동물로 변신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마우이는 이 마법 갈고리로 하늘의 태양을 끌어당기고, 섬을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등 신화적인 능력을 발휘합니다. 변신은 전투나 도주 시에도 큰 도움을 주며, 마우이는 곤충에서부터 고래까지 다양한 생물로 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우이가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레 이야기할 때마다, 그의 목소리 아래 깔린 간절함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자만이라기보다는 인정받고 싶은, 사랑받기를 원하는 영혼의 울림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강요한 적이 없는데 저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었죠. 늘 쓸모 있는 존재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삶은 고단했어요. 쓸모 있지 않은 순간에는 쓸모 없는 인간인 듯 괴로웠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영화인문학 강의 말미에 늘 함께 읽는 '무엇을 해도 무엇을 하지 않아도,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내지 않아도, 우리는 있는 그대로 온전히 귀하고 소중하다'라는 메시지는 사실은 제가 저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에요.


딸 셋인 집에서 큰 딸인 저는 아들 못지않은 자식이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친척들에게 들었던 '또 딸이네..'라는 말은 엄마에게도 상처였겠지만, 저에게도 큰 상처였나 봅니다. 딸이 뭐 어때서! 내가 증명해 내리라!라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의 자랑이고 싶었고, 동생들에게 든든한 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삶은 늘 그렇게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실패하는 때도 있었고 넘어져 웅크려있는 시간도 있었죠. 그런 시간을 지날 때마다 가장 괴로웠던 건,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었어요. 쓸모없게 느껴지는 그 자책감. 우리 가족에게 불어오는 거친 풍파를 막는 든든한 방패이고 싶었던 저는, 그러지 못하는 순간에 늘 괴로웠어요. 부모님이 강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지금은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방패 되기를 바랄까’ 싶은 마음이 들지만 10대, 20대, 30대 초중반까지도 그랬죠. 이러한 마음은 저를 더 나아지게 하고 더 나아가게도 했지만 마음 한편은 늘 생채기가 나있는 것처럼 곪아있었던 것 같아요.



쓸모 있지 않은 순간에는
쓸모 없는 인간인 듯 괴로웠습니다



저는 그랬어요.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마우이의 몸은 타투 문신으로 가득합니다. 그의 문신들은 그의 업적을 기록한 훈장이자, 동시에 그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흔적이었습니다. 저 역시 삶에서 그런 '문신'들을 새기려 했습니다. 스펙이라는 이름의 훈장들, SNS에 공유하는 완벽한 일상들, 업무 평가에서의 A등급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쌓여도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마우이처럼, 저도 더 많은 증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회사에서는 능력 있는 직원으로, 대표로, 집에서는 완벽한 딸로, 아들로, 엄마로, 아빠로, SNS에서는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 우리는 왜 이토록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마우이가 테카와의 싸움에서 자신의 마법 갈고리가 부러졌을 때처럼, 우리도 그 '증명'이라는 도구를 잃으면 존재 가치마저 상실한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하지만 <모아나>를 보며 알게 됩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있지 않다고, 그저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입니다. 연봉이 높아서도, 인스타에 좋아요를 많이 받아서도, 부모님의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켜서도 아닌, 그저 나 자신이기에 충분하다는 것을요.


진심을 주고도 진심이 돌아오지 않을 때의 상처. 그것은 마우이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았을 때의 그 고통과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진심은 상대의 반응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것, 행위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마우이가 결국 깨달았듯이, 우리의 존재 가치는 타인의 인정이나 쓸모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해도 무엇을 하지 않아도,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내지 않아도,
우리는 있는 그대로 온전히 귀하고 소중하다



이 메시지는 마우이의 여정이, 그리고 한 K장녀의 깨달음이 전하는 선물입니다. 매번 A를 받지 않아도, 매일 야근하지 않아도, 인스타에 완벽한 일상을 공유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만족시키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소중합니다.


아마도 저는 죽는 날까지 쓸모 있고 싶은, 증명하고 싶은 마음을 완전히 놓지는 못할 테지요. 이 마음은 저의 동력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 마음에 묶여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보다는 '누구에게' 쓸모 있고 싶은지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결국 그 '누구'가 저에게 소중한 사람일 테니까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그 마음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쓸모 있고 싶은 마음은 지키고 싶은 마음이자 사랑하는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일 테니까요. 반인반신인 마우이가 인간을 사랑하여 그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처럼 말이에요.


마우이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불안한 자아를 떠올리게 합니다. 누군가의 사랑과 인정, 그리고 필요한 존재로 여겨지길 바라는 마음은 결국 소중한 누군가가 있어서 생기는 감정이겠지요. 쓸모 있고 싶은 마음, 그것은 결국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마우이가 진심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 속에는 자신을 사랑해 줄 누군가에 대한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압박 속에서, 그리고 스스로 만든 과업 속에서, 우리는 마우이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내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매일 아침 인스타그램을 열고, 업무용 메신저를 켜고, 가족 단톡방을 확인하며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 있다는 것을요. 애니메이션 <모아나>는 끝내 타인의 인정 없이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소중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그리고 이 여정을 함께하는 관객들에게도 이렇게 속삭입니다.



당신은 이미 소중한 존재입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충분합니다.






이 글이 마음을 울렸다면 이번 주 토요일(11월 16일) 오전 10시에 '애니메이션 <모아나>로 만나는 감수성 훈련'에서 우리 만나요. 2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을 나누고 몰랐던 마음을 찾고 자신 안에 있었던 단단하고도 강인한, 고귀함을 발견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저는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많이 좋아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신청하기

https://sensitivity.kr/index/?idx=18

작가의 이전글 죽음의 여파는 옅어질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