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회의실에서 담당자와 마주한 첫 순간부터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A사의 교육 니즈와 우리의 커리큘럼에 대해 논의하다 A사의 교육을 위한 니즈부분에 대한 서류를 요청하자 담당자는 자사의 내용은 디지털 공유가 어렵다고 단언했다. 심지어 어느 일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사지침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팀장님도 이런 경우를 거의 겪으신 적이 없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궁여지책으로 메모해도 되냐고 물으니 그건 괜찮다며 적어 가라고 했다. 팀장님과 나는 메모를 시작했고 담당자는 팔짱을 끼고 우리를 빤히 보았다. 5분 동안의 받아쓰기를 하는동안 불편한 기운이 온 회의실을 압도했다. 내 안에서는 서서히 화가 치밀어 올랐고, 점점 표정 관리가 어려웠다. 애써 회의를 마무리 짓고 나오며 팀장님께서도 내가 이렇게 화가 난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자신은 그럭저럭 괜찮다며 웃어 보였지만 담당자의 무례한 태도에 대해서는 나의 분노에 동의하셨다.
그렇게 어렵사리 진행된 교육은 8시간짜리 강의였다. 그런데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담당자는 강사에게 직접 피드백을 주기 시작했다. 교육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강의를 모두 마치고 하는 피드백이 아닌, 강의 중간에 피드백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정말 해서는 안 될 말이거나 강의의 방향이 완전히 잘못되었을 때가 아닌 이상 강사의 재량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담당자는 전혀 문제 될 사안이 아닌 내용들에 대해 심각하게 지적하기 시작했다. 고객사의 피드백은 중요하니 나도 옆에서 경청했지만 그의 피드백은 모호하고 부정확했다. 예시나 이론 접근 방식에 대해 지나치게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했는데, 다른 기업에서는 흔히 다루는 부담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큰 결함이라도 발견한 듯한 태도였다. 그로 인해 강사님은 무척 긴장하며 강의를 이어갔고, 결국 힘겹게 마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힘겹게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조금씩이라도 서로 다정해질 수는 없는 걸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서로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생각하게 된다. 특히 일을 하다 보면 누구나 예기치 않은 순간에 회의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한숨짓는 일이 적어지도록 우리는 모두 조금 더 다정해질 필요가 있다. 결국 일이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 안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이고, 그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작은 친절과 이해일 것이다. 게다가 다정함은 비용이 들지 않는 투자이기도 하다. 반대로 갑질과 무례함은 상대방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손해다. 마음이 메말라가면서 어느새 자신이 고립되고 결국에는 일에서 느끼는 보람조차 사라질 수 있다. 그러니 다들 조금씩 더 다정해지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 모두의 일상이 조금 더 밝아지고 삶의 무게도 조금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아마도 가끔 찾아오는 그 무거운 회의감은 좀 더 드문 손님이 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