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나 SNS에서 '갑질'이 키워드인 사건을 접할 때 여론은 대체로 갑질을 행한 대상에게는 비난을, 갑질을 당한 대상에게는 동정을 보내고는 한다. 나는 그런 여론에 크게 동조되지는 않았다. 아주 드문 경험이 지나치게 확대 재생산된 것인데 굳이 감정의 동요를 가질 필요가 있냐는 관점에서였다. 특히 내가 다니던 회사는 거의 대부분이 클라이언트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이었지만 갑질을 자주 경험하는 회사는 아니었기에 더 그렇게 생각했다. 대체로 접촉하는 부서가 인사팀, 교육팀, 기업문화팀 등 HR분야의 담당자들이어서 그랬을까? 내 경험상 HR분야의 담당자들은 다들 비즈니스 매너가 좋은 편에 속했다. 혹은 내가 운이 좋았거나 갑질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무던한 감각의 소유자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 가서 감각과 감정의 섬세함이 뒤처지지 않는 내가 그럴리는 없다. 그러니 운이 좋았거나 아니면 정말 HR분야의 담당자들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 역시 평생 갑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내 기억 속 어처구니없는 갑질의 경험은 모두 한 회사에서 경험했다. 어떤 회사인지는 무서우니 굴지의 대기업정도만 밝히고 A사라고 표현하겠다.
별 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 A사의 교육요청이 들어왔다. 미팅 전에 메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당사의 교육목적과 대상에 대한 간단한 정보, 그리고 우리가 제공할만한 교육과정에 대한 제안서가 오갔다. 좀 더 자세하게 내용을 논의하기 위해 미팅이 잡혔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택시를 타기에는 애매해 내가 운전을 하고 팀장님을 대동해 미팅을 위해 A사의 인재교육원을 찾았다. 익숙하지만 여전히 번거로운 출입절차와 보안을 위한 몇몇 조치 후에 우리는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갔기에 20분이나 시간이 남아 내부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자마자 A사의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들어오셨죠? 바로 OO에서 뵙죠." 담당자에게 바로 출입알림이 가는 시스템인지 우리가 어디 있는지도 얼추 아는 눈치였다. 그렇게 회의실에서 만난 담당자의 표정은 무엇 때문인지 영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지레 업무상 처음 만나는 상황의 분위기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가벼운 미소와 함께 명함교환, 가벼운 스몰토크, 전반적인 상황 공유, 본격적인 업무 이야기라는 나름의 예상한 흐름이 싸한 기분과 함께 깨졌다. 무표정하다 못해 불친절한 인사와 고압적인 분위기, 명함은 안 가져왔다는 말을 당연하고 가볍게 건네고는 곧장 제안서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좋게 해석해서, 비즈니스 메너가 반드시! 꼭! 필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해도, 내 주관적인 선입견에 그렇게 보인 것이라고 해도, 담당자가 개인적으로 극한의 상황에 치달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해도 그 이후의 행동들은 줄줄이 이해되지 않는 것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