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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골책방 Jul 25. 2022

꿈만 꿀 수 없어

그냥 내 얘기

고맙게도

내가 글을 짓고 싶은 사람이란 걸

때마다 브런치가 알려준다.

오늘은 작가님의 글을 본 지가 300일이 지났다는 알람을 받았다.

     

그동안에도 브런치 글을 몇 번 썼지만 차마 발행을 못 눌렀다.

이유는 딱 하나다.

볼품 없었기 때문.    

 

내가 만들어냈다고 생각한(착각한) 비유는 다른 사람의 글에 이미 있었다.

새로운 글을 어떻게 창조해 내야 하지?

단어, 문장, 종결 어미를 만드는 일이 겁났다.   

 

고민 끝에 제대로 글쓰기를 배워보겠다고 마음먹고

가을 학기 대학원 입학 원서를 냈다.     


그런데 지원한 대학원 문창과에서 예비 1순위를 받았다.

1이라는 숫자에 잠시 희망을 가졌지만

1이건 100이건 불합격인 건 매한가지다.      


계획대로 되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화가 났다.

그동안 책이 이끄는 삶을 살아왔으니

이제는 꿈이 이끄는 대로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실망을 추스르지 못하고

잔뜩 안개 낀 마음속을 헤매면서

수없는 만약을 상상해 보았다.  

  

만약에 자기소개서 내용이 달랐었다면

만약에 면접 질문에 다른 대답을 했더라면

만약에 면접관을 웃게 했던 앞번호 사람의 바로 뒷번호가 아니었다면

만약에 좀 더 간절하게 기도했더라면

만약에 선발 인원이 한 명만 더 있었더라면

만약에 그날 면접관이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불현듯 남궁인 작가의 책「만약은 없다」가 생각났다.

응급실뿐 아니라 시험에도 만약은 없는 거구나.

아니, 인생 자체에 만약이 없구나.    

 

‘만약’이라는 단어가 참 씁쓸하게 느껴졌다.

애절한 마음의 상상. 존재하지 않는.    


실패감에 무뎌지기 위해

요 며칠 밤 산책을 오래 걸었다.

그런데 또 마음으로는

수없이 ‘왜’를 물었고 수많은 ‘만약’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예비 1순위를 확인한 날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누군가 나에게 커피를 건넸고 그걸 마시는 중에

타려고 했던 버스가 내 앞에서 문이 닫히고 출발해 떠났던 꿈.  

   

희한하게도 그 꿈이 딱 떠오르는 순간

만약을 그만해도 될 것 같다고 느꼈다.   

  

어쨌든 일어났을 일.

어차피 천만번 넘어지고 엎어지며 키워야 할 꿈.

맛있는 커피 한 잔 맛보았으니 그걸로 되었음이다, 라고 생각하자.  

   

버스를 놓쳤지만

꿈에서 마셨던 커피 맛은 분명 달콤했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 꿈의 맛이었던 걸까.  

   

나는 여전히

내 이야기가 조금 더 근사한 글로 만들어지기를 꿈꾼다.


아직은 그냥 내 얘기지만

누군가 공감하고 어여삐 여겨줄 때까지     


써야 한다, 알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꿈을 꾸며 쓰지 않고 있는

더 부끄러운 일.     


꿈만 꿀 수 없다.

또 다짐이다.

볼품 없는 것보다 부끄럽지 않은 것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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