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리스 통을 든 아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도 된다.

by studio imparo 소희
"엄마는 다시 스무 살이 되면 뭐 하고 싶어?“


비빔국수를 비비던 아이의 손이 멈췄다.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스무 살을 말하다


스무 살.

내 인생에서 가장 흐릿하게 지워진 숫자였다.


사람들은 그 나이를 눈부시다 말한다.

싱그럽고, 반짝이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던 시간이라고.

주변의 친구들도 자신의 스무 살은 찬란했다고 말한다.


나의 스무 살은 미숙하고 갇혀있었다.


나는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주변 상황 다 무시하고, 나만 생각하면서 공부하고 싶다.“

”응? 엄마가 그렇게 가고 싶다던 터기에 가는 거 아니고? 배낭 여행등을 못 해봐서 아쉬웠다며...“


아빠는 더 열심히 놀고 싶다고 했다고 아이는 웃으며 말해주었지만,

나는 웃음이 나지 않았다.


”그래, 그랬구나. 그랬네.“


내 스무 살은 노는 법을 배울 여유조차 없던 시기였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집안, 맏딸의 역할이란 정해져 있었다.

그 역할에 나는 너무 충실했다.


얼마 전 남동생이 말했다.


”누나가 너무 부모님의 기대치를 올려놨어. 너무 맏딸이야.“



스테인리스 통을 들고


집안의 맏딸이라는 책임감으로 가득했던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 아팠던 일.


기억은 더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 5학년,

뙤약볕이 내리쬐던 여름날에 멈춘다.


몸살로 누워계시던 엄마는 시장 단골집의 순댓국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집에 계신 아버지는 내게 그 일을 맡기셨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을 받아 들고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기엔 애매한 거리.

그 정도는 걸어 다니던 시절이었다.

아픈 엄마가 기다린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뜨거운 국물이 담긴 통은 묵직했고,

손잡이가 없는 둥근 통은 검은 비닐 봉투에 넣어 품에 안고 이동해야 했다.

올라오는 열기에 손바닥이 달아올랐다.

나는 멈추지 못했다.

빨리 가야 한다고, 엄마가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해 국그릇에 옮겨 차려드리고 나서야

숙제 공책을 폈다.


며칠 뒤 안방에서 들린 말소리.

”내가 아팠지. 응... 몸살이 크게 왔어. 그래.

둘째가 옆에서 아프냐고 물어보며 살갑게 하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

큰 애? 순댓국 사와 상만 차려주고 제 할일 하러 나거더라. 그렇지 뭐.“


그 말은 오래 남았다.

지워지지 않았다.


그 스테인리스 통은 형태만 바뀐 채 계속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아픈 아이 곁을 지키던 밤,

끝까지 앉아 먹지 못한 저녁 식탁,

사소하지 않았던 수많은 요청들.


쉰이 된 나는 다시 이력서를 쓴다.


이번에는 누군가의 딸이나 엄마로서가 아니라, 나로서.


사십 년 전,

순댓국 통을 안고 뛰던 그 아이에게 말한다.


”이제 그만 내려놓아도 된다.

네가 가고 싶은 길로 달려가도 된다.”


식탁 위 비빔국수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는 자기 몫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워진 그릇들을 바라본다.

나를 위한 상차림을 해야겠습니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갈 수는 없다.



나를 위한 그릇을 만들기 시작한다.








아자아자! 잘했다.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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