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https://brunch.co.kr/@goodpat/53
포트폴리오라는 용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은 아마 투자 분야일 것입니다. 투자에서 포트폴리오란 주식, 부동산, 채권 등 위험도가 각기 다른 다양한 자산들에 자금을 분산함으로써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투자에서 포트폴리오 구축의 핵심은 적절한 ‘분산’에 있습니다.
그러나 특허 포트폴리오는 그 반대입니다. 분산이 아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고, 기업의 역량을 집중해야 좋은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요즘 핫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크게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의 4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집니다. 만약 어떤 배터리 제조 기업이 위 네 가지 구성요소별로 각각 한 건씩의 특허를 등록하여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였다면 어떨까요? 전체로는 총 4건이지만 각 요소별로 문제되는 특허는 한 건 뿐이므로 경쟁사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특허 포트폴리오를 회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선택된 하나의 구성요소, 예컨대 양극재에 대해서만 4건의 특허를 등록한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양극재가 없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경쟁사가 리튬이온 배터리를 출시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4건의 특허 전부를 회피하여 양극재를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이 경우 회피설계의 난이도는 하나의 양극재 특허를 회피할 때보다 훨씬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같은 수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집중도의 차이에 따라 경쟁사의 회피 난이도 또한 달라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술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까요? 1) 충분한 시장의 수요가 있으면서, 2) 기업이 기술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시장의 수요가 없거나 매우 적다면 수익을 창출할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또한 특허는 선행기술과 비교하여 신규성과 진보성이 인정되어야 등록을 받을 수 있으므로 경쟁사와 비교하여 기술적 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면 좋은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이미 등록된 특허가 상대적으로 적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경쟁사 등이 이미 충분히 특허를 확보해 둔 분야라면 새롭게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더라도 여전히 선행특허권자의 허락이 없이는 제품을 생산 또는 판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기술분야를 선택할 때에는 자사의 기술력에 대한 검토와 함께 해당 기술분야의 특허 동향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선택과 집중은 상대적으로 투입 가능한 자원에 한계가 있는 스타트업에만 해당하는 전략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1년에 수천 건의 특허를 출원하는 대기업이라고 해서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집중해야 할 기술분야의 범위나 가짓수가 다를 뿐입니다. 아무리 특허가 많다고 해도 선택과 집중이 없다면 특허 포트폴리오가 될 수 없습니다. 마치VIP를 지키는 경호원과 같이 각 특허가 기업의 핵심 기술역량의 모든 측면을 빈틈없이 보호할 때 비로소 좋은 특허 포트폴리오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