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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Apr 12. 2022

그 새 세상이 달라졌다

열흘 새 완전 세상이 달라졌다     

세상이 푸르름으로 가득하다. 거리는 꽃 천지로 변했다. 겨우 열흘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 그동안 방 안에 갇혀 지내느라 세상 바뀐 줄을 몰랐다. 아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거였구나, 세상은 이렇게 생기가 가득한 거였구나.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칼칼했다. 몸 컨디션도 썩 좋은 거 같지는 않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감기에 걸렸나 보다, 좀 쉬면 괜찮겠지... 그런데 계속 괜찮지가 않았다. 집에서 뒹굴며 주말을 보내다가 월요일 병원에 갔다. “목이 칼칼하고 기침도 좀 나지만 크게 아픈 곳은 없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체온을 재보자시며 귓속으로 체온계를 집어넣는다. 37.1도.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열이 약간 있는데 혹 모르니 코로나 검사 한번 받아보시죠.” 

이튿날 아침 선별 진료소를 찾았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긴 줄을 섰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없다. 검사원이 코를 무지막지하게 쑤셨다. 무지하게 아팠다. 지 코 아니라고 이렇게 쑤셔대도 되나 화가 났지만 참을 수밖에. 

다음날 새벽부터 설마 양성은 아니겠지 생각하며 문자를 확인 또 확인. 마침내 ‘귀하는 코로나19 검사 결과 양성(확진)으로 격리 대상임을 통지합니다’ 

그렇게 일주일간을 방안에서만 뒹굴며 보내야 했다. ‘격리 명령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협박이 두려워 감히 바깥에는 나갈 엄두도 못 냈다. 아내와 딸아이도 PCR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튿날 아침 딸아이는 양성! 아내는 음성. 코로나에 걸릴까 겁을 많이 냈던 딸아이한테 무지하게 미안했다. 확진 통보서에는 <확진자 및 동거인 안내문>을 꼭 읽어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안내문은 글자가 너무 작아 읽을 수가 없었다. 돋보기를 끼고 보아도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 여기도 행정편의주의가 활개를 치고 있구나. 젊은 공무원이 만들었겠지만 결재자까지 젊었을까? 젊어도 그렇지 눈이 상당히 좋다는 내가 돋보기를 끼고도 읽지 못하는 걸 젊은 사람이라고 그렇게 쉽게 읽을 수 있을까? 이어 확진자 자기 기입식 조사서를 작성하여 보내라는 문자가 왔다. 하라는 대로 열심히 기입하다가 동거인 기입란에서 폭발을 하고 말았다. 동거인은 2인인데 아무리 해도 1인 외에는 기입이 되지 않는다. 보건소는 계속 통화 중. 마침내 점심시간에 연결된 보건소 직원이 먼저 한 사람을 기입하고 또 한 사람은 먼저 기입한 사람을 지우고 다시 기입하면 된다고 했다. 이렇게 사람을 열 받게 하지 말고 안내문에 그렇게 한 줄만 써넣으면 될 것을... 어쩔 수 없이 성질을 죽이기로 했다. 앞으로 일주일을 버티려면 무한한 인내가 필요할 것이기에.

감기약을 지었던 병원에 전화를 하니 증세를 묻고는 약국에서 약을 찾아가라는 전화가 가도록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약값은 받지 않았다. 이튿날 양성 판정을 받은 딸아이가 같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부터 소변이 보기 힘들다고 했다. 이미 오후 6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처방받은 병원에 전화를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받으셔서 대면 진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을 전화번호까지 상세히 알려 주셨다. 그것도 아주 여러 곳을. 그러면서 처방한 약 가운데 시럽이 소변을 잘 안 나오게 할 수 있으니 시럽을 빼고 약을 복용해 보라고 했다. 소변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하시면서. 소변 때문에 응급실까지 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시럽을 빼고 약을 복용하자 소변 문제는 곧 해결이 되었다. 아 친절하신 의사 선생님! 질병청이, 공무원이 이 의사 선생님 반의 반만큼이라도 상대를 배려하고 친절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건 너무 무리한 기대겠지?

코로나가 온 나라를 들쑤셔도 나는 괜찮겠지 생각했다. 평소 감기 한 번 앓지 않고 독감 예방주사 한 번 맞지 않고도 끄떡없던 나였으니까. 오로지 아내나 딸아이가 걸릴까 걱정을 했었는데 내가 덜컥 걸려 딸아이에게까지 걸리게 만들다니! 

일주일은 금세 지나갔다. 책 보고, 부탁받은 원고 하나 쓰고, 인터넷 서핑하고 하루가 오히려 짧았다. 그래도 밥 먹기는 쉽지 않았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고 밥을 먹으려니 입맛이 있겠는가? 더구나 코로나 환자가. 꼬박꼬박 빠뜨리지 않고 세끼를 챙겨주는 아내의 정성이 무서워서라도 주는 밥을 다 먹어야 했다. 처음 2~3일간 목이 칼칼하던 것도, 기침도 잦아지고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컨디션은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았다.  

   

일주일간의 격리가 끝나고 세상 밖으로 나오니 세상은 완전 달라 있었다. 겨울의 꺼풀을 벗지 못한 채였던 세상이 이미 겨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흔적조차 없었다. 개나리, 진달래는 지고 있었고 목련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길거리 가로수는 연초록 새잎을 내밀며 푸르름을 더하고. 

자연은 이처럼 때맞춰 어김없이 제 할 일을 다 하는데 나는, 또 우리 인간은 모두 제 할 일은 다 하고 있는가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은 다하고 있는가 새삼 돌아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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