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대지진, 쓰나미... 세계에서 가장 안정되고 풍요로운 나라 일본이 자연의 대재앙 앞에서는 언제나 속수무책 당하기만 한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자연재앙으로 스러져 가기도 하고 부모 형제를,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한다. 배려심 많고 친절하고 다정다감하고 나긋나긋하기까지 한 사람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결코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집을, 삶의 터전을, 희망조차 송두리째 잃어버리기도 한다.
언젠가 이른 봄 방문했던 시코쿠섬의 고찌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깨끗한 거리는 한적했고 바다는 아주 평온했다. 3월 초순이었지만 이미 매화는 지고 있었고 벚꽃은 한창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쁜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와 목조건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너무나 깨끗하고 화사한 모습에 “야 이곳에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찬탄이 절로 나왔다.
“여름철 태풍 한번 만나보십시오.” 그곳 식물원 원장님의 빙그레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에 하늘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정발산에 봄이 찾아오고 있다. 그 혹독하기만 했던 겨울이 풀 섶 속에, 나무뿌리 속에 이미 봄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봄이 되면 우리 동네 사람들은 너나없이 정발산을 더 많이 찾는다. 정발산만으로 채 성이 차지 않으면 호수공원을 패키지로 묶어 걷기도 한다. 정발산에는, 호수공원에는 날이 풀리면 싱싱한 젊음과 건강미가 넘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제 머지않아 우리 동네는 봄꽃들로 가득 찰 것이다. 산수유가 군데군데 피기 시작하면 이내 개나리와 진달래가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터이다. 더없이 화사한 벚꽃이 시가지와 호수공원, 정발산을 흐드러지게 뒤덮고 지나가면 곧 라일락이 철쭉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이어 장미가 고혹적인 자태로 여름이 가까웠음을 알릴 것이다.
정발산동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행운이자 축복이다. 고양에, 일산에 산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거늘 하물며 정발산동에 살고 있음에랴. 일산에 이사 온 것이 가장 잘한 결정이라는 유명 작가분을 나는 알고 있다. 일산에 온 것이 아내를 얻은 다음으로 행운이라는 목사님도 안다. 가을 단풍이 설악산보다 낫다는 다소 과장 섞인 일산 자랑을 하는 중앙언론인도 안다. 이들의 일산 자랑, 고양 사랑은 끝이 없다. 킨텍스를 찾은 지방 도시 한 군수님의 “대한민국에 이런 도시가 있었습니까?”라는 말이 오래오래 내 뇌리에 남아 있다.
우리 집이 고양시에 둥지를 튼 것은 96년 7월 15일이었다. 정발산동 자락에 땅을 사서 아담하게 집을 지어 이사를 왔다. 이사를 오는 날은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 강렬하게 내리치는 빗속을 뚫고 이삿짐 정리를 마치고 둘러본 우리 집은 그야말로 우리에게는 대궐이었다. 주위에 어울리지 않게 외관은 그리 이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과 아내와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집이었다. 정말 아끼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주변은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맨땅뿐이었다. 밤이 되면 사위는 적막할 뿐 온통 개구리 소리만 요란했다. 후에 고구려왕이 된 소년 을불이 머슴살이하면서 주인어른을 깨울까 밤새 우는 개구리 소리를 잠재우느라 애썼다는 옛이야기가 절로 생각나던 시절이었다.
번잡한 서울이 싫어 조용한 곳, 깨끗한 곳을 찾다가 이곳 정발산동에 집을 지어 이사 오게 된 것이다. 이사 올 당시는 모든 것이 불편했다. 주변엔 가게도, 약국도, 병원도 없었다. 공연장은 물론 그 흔한 영화관 하나 없었다. 심지어 술집조차 찾기 힘들 정도였으니... 시가지는 조용 정도를 넘어 황량할 정도로 한산했다. 문화시설을, 쇼핑시설을, 병원을, 학교를 완벽하게 갖춘 지금과는 생판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 정발산동은 조용하고 깨끗하다. 그러면서 아름답고 쾌적하다. 시가지는 꽃과 나무로 넘쳐 난다. 정발산동 같이 공연장, 쇼핑시설, 병원, 학교, 공원을 두루 갖춘 마을이 또 있을까? 주변에는 아람누리가, 호수공원이, 정발산이 있다. 국립암센터가, 백화점이 있다. 라페스타, 웨스턴 돔은 늘 우리 아이들을 부른다. 지하철역과 사통팔달 시원스레 뚫린 도로는 도시의 편리성을 더한다.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계속 일산에 살고 계시죠?” “이사 가지 않을 거죠?” 묻는다. 이 아름다운, 이토록 멋진 우리 정발산동을 모르는 소리라고 그냥 웃고 만다.
정발산동에 이사 온 것은 행운이었다. 자연의 재앙 같은 건 전혀 알지 못하는 곳, 한강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과 느긋하게 저녁 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페라를,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곳, 아내와 아이들과 산책하다가도 은은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 아름드리나무들이, 꽃이 문화시설, 편의시설과 제대로 어우러진 마을, 이러한 마을에 산다는 것이 어찌 행운 없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이름 모를 온갖 새소리와 풀냄새, 꽃내음과 함께 아침을 시작하는 이 아름다운 마을을, 쾌적하면서도 살기까지 편한 우리 정발산동을 어찌 떠날 수 있으랴. 어찌 자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람들이여, 정발산동에 와 보시라. 그리고 살아 보시라. 그러면 알게 되리라. 정발산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