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우체통 <소설>
밤이 되면 초록우체통으로 편지가 도착한다.
어디서, 누가 보내는지 모른다.
사실 그게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난 초록 우체통의 편지만 기다릴 뿐이다. 그 편지를 읽고 내 가슴이 뛰는지 안 뛰는지만 중요하다.
편지는 매일 한통씩만 온다. 딱 한통.
내가 할 일은 매일 우체통을 열고 편지를 읽으며 답장을 쓰면 된다.
쓰면서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는지, 올라갔다가 떨어지는지를 체크한다.
마음의 온도계는 딱딱해져 가는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느낌을 색으로 보인다.
마음의 온도계의 색에 따라 딱딱해진 심장이 말랑해진다는데 몸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내가 알 수가 없다.
나는 시한부이다. 심장이 딱딱해져 가는 병이 걸렸다.
심장에 석회질이 쌓여가고 있단다. 이 심장이 딱딱해지는 병을 고치는 약도 없다고 한다.
심장질환으로 유명한 대학병원의 최고위 전문의사가 정년퇴임을 하는 마지막 날 나의 진찰을 했다.
"미안합니다. "
"네 오늘이 마지막 진찰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
"언제까지 살지 모르지만..... 가슴 뛰는 일을 만나면 모를까..... "
마지막 날이라고 막말을 던지는 것인가.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도를 믿으십니까?"
"훗... 뭡니까"
줄줄이 심장병이 걸린 환자들이 있는데 이 분야 최고라는 사람이 정년퇴임을 하고 자기 남은 여생 편하게 살아보겠노라고 병원을 떠난다고 한다. 이 책임감 없는 늙은 의사가 마지막 웃음이라도 주려는 것일까.
"한 가지 처방이 있긴 한데.... 내 마지막 환자를 위한 책임감이라고 하죠.
아직 이걸 믿은 사람은 없어요. 나 또한 믿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믿기만 한다면 고칠 수 있어요. "
하며 나에게 갈색 박스를 건넨다.
"열어 보시죠."
박스를 열어보니 초록 우체통과 심장박동기와 온도계가 들어있다.
"왜 저한테 주시는 거죠? "
내 말투엔 어떤 감정도, 힘도 실려있지 않다. 심장과 함께 이미 내 감정도 메말라가고 있는 중이다.
"당신 심장엔 심지가 있어요. 그 이유뿐입니다."
"심지라니요?"
"의학자인 나도 어떻게 설명을 못하겠는데 환자인 당신이 이해할까 모르겠네요.
살고 싶습니까?"
"네. 저는 살고 싶은 의지가 있어요. "
"허허허. 심지가 있다고 하니까 의지가 있다는 겁니까? 바로 이게 당신에게 주고 싶은 이유죠.
세상의 병이 모두 약으로만 고칠 수 있는 건 아니랍니다. 자 이제 제 얘기 잘 들으세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할 거예요.
매일 이 파란 우체통으로 편지가 한 장씩 배달될 거예요. 매일 안 보면 그 편지는 없어져요.
그 사라진 편지가 당신을 살릴 수 있는 단서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꼭 매일 열어봐요. 그리고 그 편지에 답장을 쓰세요. "
"쉽네요. 1%의 확신이라도 있다면 저는 합니다. 답장만 쓰면 되나요?"
"가슴 뛰는 질문을 만나세요. 그게 당신의 심장을 차차 녹여줄 거예요.
단, 당신의 생각을 적어야 합니다. 꼭 당신의 생각 속에서 배양되어 길러져 나온 생각이요.
다음 날 당신이 쓴 답장을 다시 읽어보세요. 당신의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을 적으면 그 질문은 사라집니다.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할 질문을 놓치는 것이죠."
책임감 있는 의사의 말을 믿고 싶다.
한가닥 동아줄을 내려주고 퇴직을 한 의사의 말,
가슴 뛰는 질문을 만나는 일. 과연 내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