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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 디자이너 Jun 16. 2024

초록 우체통을 만나다

초록 우체통 <소설>


밤이 되면  초록우체통으로 편지가 도착한다.      

어디서, 누가 보내는지 모른다. 

사실 그게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난 초록 우체통의 편지만 기다릴 뿐이다. 그 편지를 읽고 내 가슴이 뛰는지 안 뛰는지만 중요하다. 

편지는 매일 한통씩만 온다. 딱 한통.

내가 할 일은 매일 우체통을 열고 편지를 읽으며 답장을 쓰면 된다. 

쓰면서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는지, 올라갔다가 떨어지는지를 체크한다. 

마음의 온도계는 딱딱해져 가는 심장이 기능을 하지 못할 느낌을 색으로 보인다. 

마음의 온도계의 색에 따라 딱딱해진 심장이 말랑해진다는데 몸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내가 알 수가 없다. 


나는 시한부이다. 심장이 딱딱해져 가는 병이 걸렸다. 

심장에 석회질이 쌓여가고 있단다. 이 심장이 딱딱해지는 병을 고치는 약도 없다고 한다. 

심장질환으로 유명한 대학병원의 최고위 전문의사가 정년퇴임을 하는 마지막 날 나의 진찰을 했다. 


"미안합니다. "


"네 오늘이 마지막 진찰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


"언제까지 살지 모르지만..... 가슴 뛰는 일을 만나면 모를까..... "


마지막 날이라고 막말을 던지는 것인가.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도를 믿으십니까?"

"훗... 뭡니까"


줄줄이 심장병이 걸린 환자들이 있는데 이 분야 최고라는 사람이 정년퇴임을 하고 자기 남은 여생 편하게 살아보겠노라고 병원을 떠난다고 한다. 이 책임감 없는 늙은 의사가 마지막 웃음이라도 주려는 것일까. 


"한 가지 처방이 있긴 한데.... 내 마지막 환자를 위한 책임감이라고 하죠. 

아직 이걸 믿은 사람은 없어요. 나 또한 믿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믿기만 한다면 고칠 있어요. "

하며 나에게 갈색 박스를 건넨다. 


"열어 보시죠."


박스를 열어보니 초록 우체통과 심장박동기와 온도계가 들어있다. 


"왜 저한테 주시는 거죠? "


내 말투엔 어떤 감정도, 힘도 실려있지 않다. 심장과 함께 이미 내 감정도 메말라가고 있는 중이다. 


"당신 심장엔 심지가 있어요. 그 이유뿐입니다."

"심지라니요?"

"의학자인 나도 어떻게 설명을 못하겠는데 환자인 당신이 이해할까 모르겠네요. 

살고 싶습니까?"

"네. 저는 살고 싶은 의지가 있어요. "

"허허허. 심지가 있다고 하니까 의지가 있다는 겁니까? 바로 이게 당신에게 주고 싶은 이유죠.

세상의 병이 모두 약으로만 고칠 수 있는 건 아니랍니다.  자 이제 제 얘기 잘 들으세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할 거예요. 

매일 이 파란 우체통으로 편지가 한 장씩 배달될 거예요. 매일 안 보면 그 편지는 없어져요. 

그 사라진 편지가 당신을 살릴 수 있는 단서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꼭 매일 열어봐요. 그리고 편지에 답장을 쓰세요. "

"쉽네요. 1%의 확신이라도 있다면 저는 합니다. 답장만 쓰면 되나요?"

"가슴 뛰는 질문을 만나세요. 그게 당신의 심장을 차차 녹여줄 거예요.

단, 당신의 생각을 적어야 합니다. 꼭 당신의 생각 속에서 배양되어 길러져 나온 생각이요.

다음 날 당신이 쓴 답장을 다시 읽어보세요. 당신의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을 적으면 그 질문은 사라집니다.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할 질문을 놓치는 것이죠." 


책임감 있는 의사의 말을 믿고 싶다. 

한가닥 동아줄을 내려주고 퇴직을 한 의사의 말, 

가슴 뛰는 질문을 만나는 일. 과연 내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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