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대로사니즘
3년 전 나는 다이어리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미래의 나는 미래의 나로 존중받아야 한다’
지금의 나는 그 문장을 매일 새롭게 살아가는 중이다.
나는 아직 나를 그리는 중이고,
존중받을 미래의 나를 초대하고 있다.
나의 50살 이후의 삶은 존재로서의 나를 완성해 가려는 다짐이고,
이 문장은 그 다짐을 조용히 받쳐주는 신념이다.
나는 나를 위해 계획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위해 존중하며 준비한다.
성과 중심의 미래 설계가 아니라
존재 중심의 미래 존중을 실천 중이다.
나의 두 번째 직업 아트테라피스트, 문화예술기획자,
마음연대자로 통합이 된다.
그 도구로 쓰는 예술, 그림 그리고 만들기.
‘그림’은 계획이 아니다.
그건 ‘보이지 않는 감정’을 ‘형태 있는 선과 색’으로 존중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나를 그리는 중'인 동시에,
‘미래의 나를 이미 존중한 과거의 나’이기도 하다
나는 미래의 나를 그리며,
동시에 과거의 나의 신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존중하며 감정의 색으로 초대하는 중이다.
미래를 밀어붙이지 않고, 감정과 감각의 결을 따라 그리는 것.
내가 지금 그리는 모든 책은 ‘존중하는 삶의 무늬’를 남기는 작업이다.
내가 말하는 '결대로사니즘’이라는 건 결국 존중의 리듬이었다.
5년전 결대로사니즘이 입에 착 달라붙었을 때는
오늘의 나처럼 '결'이란 단어를 깊이 묵상하지 못했다.
미래를 밀어붙이지 말고,
결을 따라 그리자.
미래의 나는 이미 기다리고 있다.
다만, 존중받길 원할 뿐이다.
과거의 내가 남긴 말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다면,
—당신은 오늘 어떤 문장을 미래의 나에게 남기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