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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 디자이너 Aug 08. 2022

비밀의 열쇠를 남긴

아직 끝나지 않은 애도의 시간

책 한 권을 잘 만나면 생각이 바뀌고 관점이 바뀌면 인생이 바뀔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도 그러할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커피를 마시러 부엌에 있느냐 처음으로 이 방을 모두 비웠을 때 모리 교수님은 조용히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는 떠났다. 나는 교수님이 일부러 그렇게 돌아가셨다고 믿는다. 싸늘하게 마지막 숨이 끊기는 순간을 누군가 보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교수님은 평화롭게 가고 싶어 했고, 정말로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어머니는 숨이 멎어가는 순간 그 끝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인간의 숨이 붙어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섬세한 기적들을 온몸으로 다 보여주셨다. 숨기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시 죽다 살아난 기적과 함께 어떤 가족의 기도 덕인 건지 한 달의 시간을 더 선물로 주셨다. 그 선물 같은 시간이 고스란히  자식들의 가슴속에 묻히기를 원하셨나 보다. 


일요일 3시 30분 즈음 목사님이 임종예배를 오셨다. 그 전날은 큰 형님이 병실 당번인 날이라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형님 말에 의하면 그 전날, 잠만 주무시고 통증도 못 느끼시고 힘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셨다. 형님은 뭔가를 직감하신 것 같았다. 우리에겐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 목사님이 오셨고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는 신랑을 병실에 붙잡았다. 그리고 지하철에 내려 집으로 가려는 어머니의 첫 손자인 큰아들을 병실로 오게 했다. 작은 형님 부부가 곧이어 병실에 왔고 어머니의 아들, 딸, 사위 , 며느리 , 큰손자까지 다 모였다. 


임종예배 때만큼은 어제와 오늘 아침과는 다르게 어머니는 손을 뻗어 목사님 손을 잡으셨다.

팔이 정말 높이 올라갔다. 힘이 없는 목소리였지만 찬송도 따라 부르셨다.  어머니가 힘이 없으셨다고??라는 것이 의심될 만큼. 

나중에 지인 의사들한테 들으니 임종 전에 그렇게 손이 올라갈 만큼 힘이 있었다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마지막  목사님의 기도가 끝나고 교회로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가꾸어 낸 직계가족들은 삥 둘러서 그냥 직감적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눈을 감고 계셨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계시던 중에 입에서 올리브 그린에 가까운 녹색 거품이 나왔다. 간호사를 다급히 불렀다. 


그렁그렁 소리를 내며 어머니는 어떤 마지막 말을 하시려고 했다. 녹색 거품은 계속 나왔고 어머니의 쉰소리와 섞였다. 귀를 아무리 갖다 대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왜!!! 지금은 어떤 말도 알아들을 수 없는지, 제발 어머니와 연결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산......."

"산이요? 산에 있는 집이요?"

고개를 절레절레.....

"산.........."


말을 말아야지 하는 기색을 보이셨다. 그렇게 해독을 풀지 못하는 말을 남기셨다. 

'남아서 내가 못다 한 '산 000' 숙제를 풀고 와라~~' 이런 작별인사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심장 박동기의 '삐-------------' 소리만 남을 뿐이었다.

 

어머니 옆으로 나비 같은 것이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병실 벽에 붙어있던 어머니의 자화상이 웃고 있었다. 그 옆에 그려놓은 꽃에서도 향기가 나는 듯했다. 


어머니가 둘째 손녀와 매일 걷던 숲길,  마지막 어머니의 숨결의 색깔은 여름 숲과 같은 녹색이다. 

어머니가 가장 행복하게 마셨던 숲의 공기 색깔.


이토록 자연스러운 죽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축복이 아닐 것이다. 

너무 평화롭게 우리를 지나간 어머니,


10분 정도 그렇게 어머니의 여운과 함께 병실에서 머물렀던 것 같다. 여전히 어머니의 손은 따뜻했고 숨이 멎으면 차가워진다는 말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어머니의 육체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인 채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 옆을 아들이 따랐다. 

나머지 가족들은 병실 정리를 하고 어머니가 쓰던 일회용품들을 간호사실에 기증했다. 

우리는 바로 옆의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어느 날 꿈에 어머니가 검은 사자들이 어머니를 양쪽에 잡고 버스를 타더라는 것이다. 버스에 내렸는데 내가 저 끝에서 "어머니 여기로 오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검은 사자들을 따라가지 않고 나에게 왔다고 한다. 


나는 1년 전 울음을 토해냈던 이전의 나를 본다. 어머니 덕에 세상을 향한 첫울음이 시작된 날일 것이다. 

마음속에 정체되어 있던 찌꺼기들을 흘려버릴 수 있었던 날.  거기에 서있는 '나'에게 말한다. 

너의 마음을 잘 지켜왔구나. 


이제 행복을 토해내며 살자고.   


어머니가 마지막 숨을 모아 하시려던 말은 비밀의 문서처럼 남았다. 남아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오라고. 

꼭 비밀의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열쇠를 남기고 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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