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간절했던 것이 가장 벗어나고 싶은 것이 될 뻔했던 그때.
잉크가 또 굳어버렸다. 만년필은 팀장님의 퇴사 선물이었다. 입사 삼 개월 차, 팀장님이 다른 회사로 옮겨가면서 나에게 준 작별의 선물이었다. 굳어버린 펜촉을 따뜻한 물에 퐁당 넣었다. 펜촉이 담긴 물이 금세 푸르게 물들었다.
졸업 전시를 마친 그해 11월, 첫 직장에 첫 출근을 하던 날이었다. 운 좋게 학창 시절 간절히 원하던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내 인생은 이제부터 꽃길이라고 생각했다. 팀장이라 소개받은 분께 꾸벅 인사를 했다. 단정하게 기른 콧수염, 옅게 반짝이는 머리, 까만 안경테 너머로 보이는 눈이 날카로워 보였다. 나를 바짝 긴장시키는 팀장님의 아우라였다.
디자이너의 회사 생활은 상상 이상이었다. 출근한 지 단 며칠 만에 침낭을 급하게 주문했다. 밤이면 로비 소파에서 쪽잠을 자야 했기 때문이었다. 막내는 문틈으로 들어오는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눈을 붙였고, 2년 차 선배는 호사롭게 사무실 책상 위에서 잘 수 있었다. 실장님은 사무실 안에서 접이식 침대를 썼다. 아침이면 회사 앞 사우나에 단체로 몰려가 씻고 바나나 우유를 하나 물고 들어와 다시 일했다. 계속되는 마감과 밀려오는 새로운 프로젝트들에 막내는 허덕였다. 야근 중이던 어느 새벽, 조용히 내 자리에 오신 팀장님이 “저자 사인본이야.”라며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팀장님이 쓴 책이었다. 딱 한 달째 되던 날 겨우 참고 있던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내 스물네 번째 생일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시간이 날 때면 회사 근처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었고, 그림을 그렸고, 책을 읽었고, 함께 소설을 쓰며 서로 바꿔 읽기도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꿈을 누군가에게 말했다. 내 눈이 반짝인다고 말해준 그였다. 글도 쓰고 거기에 삽화도 네가 그려 넣으면 더 좋겠다는 말을 보태주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꿈을 꿨다. 모두가 송장 같았던 곳, 누군가는 디스크로 허리가 아파 6개월에 한 번씩은 기어 다닌다고 했고, 예전의 누구는 심장마비로 돌연사했다는 얘기가 들리는 그 살벌한 곳에서, 그 바닥에서 오 년을 버티게 해 준 삼 개월이었다. 가장 간절했던 것이 가장 벗어나고 싶은 것이 될 뻔했던 그때.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팀장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어느 신문사의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덕분에 소설을 처음 쓰게 된 것이 여기까지 왔다며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마흔 살은 너무 끔찍해, 마흔 살이 되면 죽을 거라던 팀장님은 아직 쓰고 있었다. 다행이다. 서로 다른 길 위에 있지만 같은 꿈을 꾸며 걷고 있었다. 우리는 여태껏 써가며 기억하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