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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트릭 Mar 25. 2022

젊은 작가의 죽음, 뒤늦은 유작의 성공

<바보들의 결탁>(존 케네디 툴) 리뷰

<바보들의 결탁>(존 케네디 툴)


    때로는 작가가 남긴 작품 뿐만 아니라, 작가의 인생 그 자체가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기도 합니다. 특히 저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 작가의 작품을 보고나면, '만약 이 사람이 더 오래 살았다면... 얼마나 더 우리를 풍성한 문학의 세계로 끌어들였을까?'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폭풍의 언덕>이라는 불멸의 명작을 쓴 에밀리 브론테는, 폐결핵으로 만 3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소설 <폭풍의 언덕>을 출간한지 불과 1년 뒤였죠. 당시에는 <폭풍의 언덕>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했고, 작가가 세상을 떠나고 세월이 흐른 후에야 재평가되며 찬사를 받았습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할 <바보들의 결탁>이라는 작품을 쓴 존 케네디 툴은, 만 32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심지어 <바보들의 결탁>은 출판사의 거절로 생전에 출간조차 되지 못 했었죠. 그런데 어떻게 작가 사후에 책이 출간되고, 나아가 퓰리처상까지 수상할 수 있었을까요?




1. 존 케네디 툴


존 케네디 툴 (출처 : 가디언)


    존 케네디 툴은 뉴욕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군인으로 징집되어 복무 중에 <바보들의 결탁>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또한 좋아했음을 엿볼 수 있죠. 전역 후에 마침내 작품을 완성하여 출판사에 제출했으나, 반응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출판사에서는 툴의 생각과는 다르게 자꾸 원고 수정을 원했고, 결국 출간은 거절되었습니다. 툴은 이러한 과정에서 굴욕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은 듯합니다. 이후 그의 편집증과 우울증이 점점 심해졌고, 결국 1969년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맙니다.


    이렇게 <바보들의 결탁>은 영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델마 툴은, 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수년 동안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보내고 거절당했지만, 1976년 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던 작가 워커 퍼시를 찾아갑니다.


    그녀의 제안은 황당했다. 세상을 떠난 자기 아들이 60년대 초반에 소설 한 권을 쓴 게 있으니 한 번 읽어봐 달라는 것이었다. 제가 왜 그런 일을 하고 싶겠습니까? 내가 물었다. 왜냐하면 이건 훌륭한 소설이니까요, 하고 부인은 말했다. 세상에 전혀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면 이게 분명 그런 일이었다. 죽은 소설가의 모친을 상대하고, 설상가상으로 그 모친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원고를 읽어야 하는 일 말이다. 그러나 부인은 끈질겼고,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내 연구실에 서있는 부인의 손에서 묵직한 원고를 건네받는 사태에 이르고 말았다. 이젠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p. 7)


    워커 퍼시는 아무런 기대 없이 원고를 읽기 시작했지만, 일단 읽기 시작한 후로는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큰 감명을 받은 퍼시는 출간을 위해 3년 넘게 사람들을 설득하며 노력했고, 마침내 1980년에 존 케네디 툴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 <바보들의 결탁>이 출간됩니다. 그리고 1981년, 이 책은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2. 바보들의 결탁


작품의 배경 - 1950년대 뉴올리언스 (출처 : 위키피디아)


    비록 작가의 삶은 비극적으로 끝이 나지만, 그의 작품 <바보들의 결탁>은 우스꽝스러운 주인공을 통해서 계속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 소설입니다. 아이러니하죠. 이 책의 주인공 이그네이셔스 라일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는 괴팍한 성격에, 일할 생각은 전혀 없이 엄마에게 얹혀 사는 인물입니다.


    "이그네이셔스, 나 좀 들어가자." 부인이 소리를 질렀다. "제 방에 들어오시겠다고요? 어림도 없는 소립니다." 이그네이셔스가 문 너머로 말했다. 라일리 부인이 문을 쾅쾅 두들겼다. "대체 요즘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군요, 어머니. 일시적인 정신착란에라도 빠지신 거 아닙니까. 너무 무서워서 문을 못 열겠는데요. 칼이나 깨진 와인 병 같은 걸 들고 계실지도 모르니까요." "문 좀 열어라, 이그네이셔스." 이그네이셔스가 요란스레 끙끙거렸다. "나머지 저녁 시간을 완전히 망쳐놓으셨으니 이제 만족하십니까?" (p. 79)


    엄마를 대하는 모습만 봐도 어떤 인물인지 예상이 되시죠? 이렇게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아들을 보다못한 엄마는, 이그네이셔스에게 나가서 일자리를 구하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마지못해 이그네이셔스는 바지 공장 사무실 직원, 핫도그 노점상으로 잠깐씩 일하지만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며 쫓겨납니다.


    "보건당국에서 자네한테 고발이 들어왔네, 라일리." "오, 겨우 그겁니까? 사장님 얼굴을 뵈니 무슨 간질 발작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는데." 한입 가득 핫도그를 우물거리며 들어온 이그네이셔스가 수레를 차고 안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중략) "닥쳐, 이 돼지 굼벵이 같으니. 지금 먹고 있는 소시지, 값은 치르고 먹는 건가?" "뭐, 간접적으로는요. 제 쥐꼬리만한 급료에서 빼면 되지 않습니까? 어디 한번 말씀해보시죠. 그 케케묵은 위생 규정 중에 제가 뭘 위반했다는 겁니까? 조사관이 뭔가 위증을 한 거 같은데요." (p. 301)


    아들의 기행에 시달리다가 지친 엄마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정신병동으로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꼼짝없이 잡혀가게 생긴 그 순간, 이그네이셔스와 애증의 관계인 옛 여자친구 머나가 구세주처럼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그네이셔스가 머나의 차를 타고 용기를 내어 새로운 세상을 향해 떠나며, 작품은 끝이 납니다.


    거기, 현관에는 머나가 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머나가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저건 바로 탈주로였다. (중략) 앰뷸런스가 지나갈 때 몸을 잔뜩 구부리고 내다보던 이그네이셔스는 앰뷸런스 문에 인쇄된 '자선병원'이란 글자를 목격했다. 앰뷸런스 지붕에서 회전하는 적색 불빛이 두 차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스쳐 지나는 그 짧은 순간 차 위로 와락 튀었다. (중략) 이제부터 운명의 여신은 과연 그의 바퀴를 어느 쪽으로 돌리려는가? 새로이 닥칠 운명의 주기는 그가 이제껏 겪은 그 어떤 것과도 다르리라. (p. 551)




3.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시킨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비록 이그네이셔스가 여러 가지 비호감 요소를 갖춘 캐릭터지만, 마지막에 그가 정신병동으로 끌려가지 않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면 묘한 쾌감이 느껴집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인생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때로는 심하게 꼬인다고 느껴지는 게 우리네 삶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이그네이셔스에게는 나아갈 길을 제시했으면서, 정작 본인은 가던 길에서 멈춰버린 저자 존 케네디 툴이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물론 제가 감히 그가 겪었을 슬픔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작품이 당장 빛을 못 보더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갔으면 어땠을까...하는 안타까움이죠.


    너무나도 유명한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 말하는 것처럼, 오늘이 힘들어도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오늘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도 오기 마련이니까요. 괴팍하고 유별난 우리들의 주인공 이그네이셔스가 그랬던 것처럼, 새롭게 다가올 운명의 바퀴를 기다리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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