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히샴 마타르 지음) 리뷰
1980년대는 늘 리비아의 정치사에서 특별히 충격적인 시기로 묘사된다.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공 광장이나 운동 경기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국외로 달아난 반체제 인사들은 여기저기로 쫓겨다녔다. 납치당한 사람도 있고, 암살당한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는 정권의 반대파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중략) 1990년 3월, 아버지는 카이로의 아파트에서 이집트 비밀경찰에게 납치되어 카다피에게 넘겨졌다. 아버지는 트리폴리에 있는 아부살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은 '종착역' - 정권이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사람들을 보내는 곳 - 으로 알려져 있었다. (p. 13 ~ 19)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리비아 독재 정권의 근심은 점점 커졌다. 일반 대중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일부 정치범들을 석방했다. 2011년 2월 3일, 그러니까 그들이 수감된 지 21년이 지난 뒤, 아버지를 뺀 나머지 친척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그로부터 14일 뒤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자들을 성공적으로 몰아낸 여세를 몰아, 리비아 전역에서 대중 봉기가 폭발했다. (p. 59)
아버지는 아부살림의 대학살 현장에서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아부살림에 갇혔던 몇몇 사람들이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자발라 마타르가 그날 마당에 끌려 나온 사람들 가운데 있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내게 말했다. (중략) 따라서 결코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의 삶이 마지막을 맞은 날이 1996년 6월 29일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p. 211)
1996년 6월 28일, 금요일이었어. 오후 기도가 끝나자마자 아우성치고 실랑이하는 소리, 총소리가 들렸어. 교도관들이 9호 감방에 음식을 집어넣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교도관을 덮치면서 폭동이 시작되었지. (중략) 당시 리비아 정보국장이었던 카다피의 처남 압둘라 세누시에게, 우리는 지금까지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처우를 받았고,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더 낫다고 말했지. 세누시는 '내일 당신들에게 새로운 교도관들과 충분한 음식을 제공하고 처우 개선을 약속하겠소'라고 큰소리쳤어.
(중략)
동트기 전 새벽 그들은 우리가 평소 작업장이라고 부르던 헛간 같은 곳에 모두 몰아넣었어. 그러고 몇 초 뒤 커다란 폭발음이 들리더니 권총, 기관총 할 것 없이 온갖 종류의 무기들이 일제 사격하는 소리와 그 작업장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어. 나중에 압둘라 세누시가 그 작업장에 수류탄 하나를 던지는 것을 신호로 학살극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중략)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어. 수백 명의 수감자들이 교도소 안마당으로 끌려 나왔지. 군인과 교도관들은 일제히 발포하기 시작했어. (p. 310 ~ 316)
내가 아버지에게 바라는 것은 아주 평범했다.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그 유명한 아들처럼 나는 적어도 "자기 집에서 서서히 나이를 먹어가는 아버지처럼, 그런 어떤 행복한 남자가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텔레마코스와 달리, 나는 2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버지의 "밝혀지지 않은 죽음과 침묵"을 계속해서 견뎌내고 있다. (p.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