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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트릭 Feb 13. 2022

실종된 아버지를 찾는 머나먼 여정

<귀환>(히샴 마타르 지음) 리뷰

<귀환>(히샴 마타르 지음)


    오늘날 대한민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집값 폭등, 청년 실업 등으로 인해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오죠. 그러나 이러한 정권에 대한 비판을 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거나, 가족의 안전에 대한 위협을 느껴서 해외로 망명을 가지는 않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러한 자유를 누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죠.


    <귀환>의 저자 히샴 마타르는,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 정권에 저항했던 자발라 마타르의 아들입니다. 히샴 마타르는 어린 시절부터 이집트, 영국과 같은 타지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냈고, 아버지 자발라 마타르는 독재 정권에 의해 반역죄로 체포되었습니다. 1996년 아부살림 교도소에서의 대학살 이후 아버지는 실종 상태가 되었고, 이 책은 '실종된 아버지를 찾는 머나먼 여정'에 대한 아들의 이야기(논픽션)입니다.




1. 카다피 독재 정권


무아마르 알 카다피 (출처 : 위키피디아)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육군 대위로 복무 중이던 1969년, 기존의 왕정을 무너뜨리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리비아의 모든 권력을 장악합니다. 자신의 독재 체제에 저항하는 자들은 가차없이 탄압하며, 2011년까지 무려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하였죠. 의회 제도와 헌법도 폐지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카다피 시절에 대한 묘사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1980년대는 늘 리비아의 정치사에서 특별히 충격적인 시기로 묘사된다.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공 광장이나 운동 경기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국외로 달아난 반체제 인사들은 여기저기로 쫓겨다녔다. 납치당한 사람도 있고, 암살당한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는 정권의 반대파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중략) 1990년 3월, 아버지는 카이로의 아파트에서 이집트 비밀경찰에게 납치되어 카다피에게 넘겨졌다. 아버지는 트리폴리에 있는 아부살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은 '종착역' - 정권이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사람들을 보내는 곳 - 으로 알려져 있었다. (p. 13 ~ 19)


    이러한 공포 속에서 영원할 것만 같았던 카다피의 장기 집권도, 2011년 "아랍의 봄"이라는 바람이 불면서 무너집니다. 아랍의 봄이란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인근 국가들에도 퍼진 반정부 시위인데, 리비아에서도 시민군이 카다피군에 격렬하게 저항한 끝에 마침내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합니다. 이후 카다피는 은신처로 도피하지만, 결국 2011년 10월에 시민군에게 발견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리비아 독재 정권의 근심은 점점 커졌다. 일반 대중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일부 정치범들을 석방했다. 2011년 2월 3일, 그러니까 그들이 수감된 지 21년이 지난 뒤, 아버지를 뺀 나머지 친척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그로부터 14일 뒤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자들을 성공적으로 몰아낸 여세를 몰아, 리비아 전역에서 대중 봉기가 폭발했다. (p. 59)




2. 아부살림 대학살


아부살림 교도소 (출처 : 뉴욕 타임즈)


    저자 히샴 마타르는 카다피 정권에 맞서 아버지를 비롯한 정치범 석방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대사관을 찾아다니며 외교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카다피의 아들 세이프와 직접 면담하기도 합니다. 또한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후에는 그동안 돌아올 수 없었던 리비아로 돌아와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많은 곳들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죠. 그러나 저자의 아버지는 "아부살림 대학살" 이후로 행방이 묘연합니다.


    아버지는 아부살림의 대학살 현장에서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아부살림에 갇혔던 몇몇 사람들이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자발라 마타르가 그날 마당에 끌려 나온 사람들 가운데 있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내게 말했다. (중략) 따라서 결코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의 삶이 마지막을 맞은 날이 1996년 6월 29일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p. 211)


    2011년 9월, 리비아 임시정부는 아부살림 교도소 근처에서 1996년 학살 당한 1,270여 명의 유해가 집단 매장된 무덤을 발견했습니다. 1996년 당시 아부살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들이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달라며 시위를 벌였는데, 처우 개선은 커녕 무차별 발포로 끔찍한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저자의 외삼촌 흐마드는 그 악몽 같았던 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1996년 6월 28일, 금요일이었어. 오후 기도가 끝나자마자 아우성치고 실랑이하는 소리, 총소리가 들렸어. 교도관들이 9호 감방에 음식을 집어넣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교도관을 덮치면서 폭동이 시작되었지. (중략) 당시 리비아 정보국장이었던 카다피의 처남 압둘라 세누시에게, 우리는 지금까지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처우를 받았고,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더 낫다고 말했지. 세누시는 '내일 당신들에게 새로운 교도관들과 충분한 음식을 제공하고 처우 개선을 약속하겠소'라고 큰소리쳤어.
(중략)
    동트기 전 새벽 그들은 우리가 평소 작업장이라고 부르던 헛간 같은 곳에 모두 몰아넣었어. 그러고 몇 초 뒤 커다란 폭발음이 들리더니 권총, 기관총 할 것 없이 온갖 종류의 무기들이 일제 사격하는 소리와 그 작업장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어. 나중에 압둘라 세누시가 그 작업장에 수류탄 하나를 던지는 것을 신호로 학살극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중략)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어. 수백 명의 수감자들이 교도소 안마당으로 끌려 나왔지. 군인과 교도관들은 일제히 발포하기 시작했어. (p. 310 ~ 316)




3. 독재 이후의 리비아


2019년 7월, 리비아 국민군 세력과 교전중인 리비아 임시정부 세력 (출처 : TIME)


    이처럼 암울했던 시기를 지나, 독재 이후의 리비아는 지금 어떤 상황일까요? 안타깝게도, 카다피를 몰아내고 1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까지도 리비아는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KIDA(한국국방연구원)에 따르면, 리비아 동부를 장악한 국민군 세력과 UN이 인정한 임시정부 세력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통합 정부 수립을 위한 대선이 원래 2021년 12월 예정되어 있었으나, 이마저도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가기 위한 아프리카 난민들이 리비아로 몰려들고, IS와 같은 테러 조직 또한 유입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아수라장입니다. 국제사회가 중재에 나서고 있으나,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마다 입장이 조금씩 다르니 단기간 내에 해결은 어려워 보입니다. 결국 또다시 공포와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하는 리비아 국민들이 안타까울 뿐이며, 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내가 아버지에게 바라는 것은 아주 평범했다.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그 유명한 아들처럼 나는 적어도 "자기 집에서 서서히 나이를 먹어가는 아버지처럼, 그런 어떤 행복한 남자가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텔레마코스와 달리, 나는 2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버지의 "밝혀지지 않은 죽음과 침묵"을 계속해서 견뎌내고 있다. (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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