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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트릭 Dec 31. 2021

[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의 용기에 대하여

<거꾸로 읽는 세계사>(저자 유시민) 리뷰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몇 년 전에 유시민 작가의 <나의 한국 현대사>를 굉장히 흥미롭게 읽고, 그의 또다른 역사 책인 <거꾸로 읽는 세계사>도 읽고자 하였으나 당시 절판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서점 베스트셀러를 보니 이 책의 전면 개정판이 떡하니 올라와 있더군요! 서문을 보니 유시민 작가는 청년 시절의 거친 문장과 공격적인 시선 등이 민망하여 책을 거두어들였으나, 저처럼 이 책을 찾는 독자들을 위해 개정하여 다시 냈다고 합니다.


    20세기에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났지만, 그 중에서도 작가가 가장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11가지 사건들을 이 책은 다룹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분쟁과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되어온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책을 읽으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오늘은 11가지 사건들 중에 작가가 '20세기의 개막'이라고 표현하였던 "드레퓌스 사건"에 대하여 다루고자 합니다.




1. 알프레드 드레퓌스


    다들 드레퓌스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거든요. 드레퓌스는 유대인이자 프랑스 육군 장교였습니다. 그런데 1894년 독일 측에 프랑스군 기밀문서를 넘긴 스파이의 편지와 동일한 필체를 가지고 있다는 근거로, 군사법원에서 반역죄가 인정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습니다. 드레퓌스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지만, 악마섬의 돌감옥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런데 재판 반년 후, 새로 취임한 정보부장이 '문제의 편지'와 동일한 필체가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진범은 따로 있고, 드레퓌스는 누명을 쓴 것이었죠! 정보부장은 이에 대해 상부에 보고하지만...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처음에는 묵살을 하더니, 언론을 통해 이슈가 되자 마지못해 재조사를 진행하나 군사법원은 진범 에스테라지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이 때 에밀 졸라가 등장합니다.


1898년 1월 13일 로로르 신문에 실린,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2.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오늘날에야 사건의 진실이 명백히 밝혀졌지만, 당시에는 대다수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와 반유대주의 분위기가 맞물려 드레퓌스가 유죄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작 <목로주점> 등으로 이미 이름을 널리 알린 소설가였던 에밀 졸라는, 일면식도 없는 드레퓌스를 위해 로로르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기고합니다.


    나는 최후의 승리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더욱 강한 확신으로 거듭 말씀 드립니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중략) 나의 불타는 항의는 영혼의 외침입니다. 부디 나를 중죄 재판소로 소환해 푸른 하늘 아래에서 조사하기를 바랍니다. 기다리겠습니다. (p. 31)


    국방부와 군사법원이라는 거대한 세력 앞에서 절망하고 있던 드레퓌스와 그 가족들에게, 에밀 졸라가 보여준 용기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요? 이 글은 프랑스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재심을 요구하는 운동에 불을 지핍니다. 이후에도 오랜 시간과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마침내 드레퓌스는 1906년 7월에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습니다.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쓰고 나서 군대를 비방했다는 죄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으며, 반유대주의자들의 거센 비난과 협박에 시달렸고, 영국으로 망명을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02년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드레퓌스는 무죄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용기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저도 살다보면 때로는 진실을 말하기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들이 생기는데, 쉽진 않겠지만 졸라의 용기를 떠올려야겠습니다.


분노한 군중들에 둘러싸인 에밀 졸라 (앙리 드 그루)


3.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드레퓌스 사건이 1894년에 일어났는데, 놀랍게도 비슷한 사건이 불과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탈북자 출신이며 서울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유우성 씨를, 2013년 국정원이 간첩 혐의로 긴급 체포하여 검찰이 기소한 사건입니다. 1심, 2심을 거쳐 2015년 대법원은 유우성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하여 무죄로 판단하여 결국 그는 간첩이 아님이 밝혀졌죠.


    재판 진행 과정에서 국정원이 제출한 증거가 일부 조작되었으며, 유우성 씨의 동생에게 자백을 받기 위한 회유 및 협박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유우성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2020년에 1심에서 일부 승소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드레퓌스, 탈북자 출신인 유우성 씨. 사회적 약자를 간첩으로 몰아세운 국가기관. 굉장히 비슷하지 않나요? 그래도 법원에서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실이 밝혀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새기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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