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가 오윤(1946~1986)의 이름을 알기 이전에 그의 판화 그림부터 친숙해져 있었다. 1980년대에풀빛 출판사에서 출간했던 풀빛 판화 시선의 표지 그림이 그의 목판화로 디자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 시집에 그의 판화 그림이 한지에 인쇄되어 제본되어 있었기에 그의 선 굵은 판화가 눈에 익었던 것이다.
오윤은 1980년대 후반에 등장, 우리 미술의 새로운 흐름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민중미술의 선구적인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
현실 문제에 대한 인식은 일찍이 서울대 미술대학에 재학 중 김지하, 임세택과함께 '현실 동인'을 결성했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화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그림에 현실에 대한 인식을 담기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 이후 1979년에 '현실과 발언' 결성에 참여하면서이다. '현실과 발언'은 같은 판화가인 홍성담이 참여한 '광주자유미술인협회'와 더불어 이후 1980년대 후반의 민중미술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오윤이 각종 서적의 표지 그림과 삽화를 그리는 등 문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중 1983년에 간경화로 기대 여명이 1년에 불과하다는 진단을 받지만 치료를 거부하고 오히려 활발한 활동을 펼쳐갔다. 그리고 후배 화가들이 결성한 '민족미술협의회'에서 마련한 전시 공간인 '그림마당 민'의 첫 초대전을 1986년에 가지게 되는데 이는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이 되었다. 이후 이 전시회는 연장 전시를 거쳐 전국 순회까지 계획되어 있지만 부산 전시 중인 그해 7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간경화가 발병한 1983년부터 작고한 1986년에 이르는 시기가 창작의 정점에 도달했던 시기로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화가로서의 명성이 일반인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오윤의 판화와 테라코타(원래 오윤의 대학 때 전공이 조소였다) 작품이 일반의 사랑을 받는 데에는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에 힘입은 바가 크다. 평소에 평범한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던 오윤은 주변의 빛날 것 없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진솔함을 보았고 그 솔직한 모습과 삶을 구현하고자 했다. 조소 전공이었던 그가 목판화에서 창작의 길을 찾은 것도 판화가 가진 대중적이고 조촐한 표현력에 주목한 것이리라.
우리나라의 민중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과 긍정적인 평가가 뒤따르면서 국제적으로 민중미술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는 추상 미술에 뒤이어 신구상 회화가 주류 미술에 진입하는 세계 미술 동향에 시의적절하게 맞았다는 것과 함께 민중미술이 가진 독창성과 방향성에 세계가 주목한 결과였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민중미술은 한국 미술의 새로운 흐름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 전시한 '민중미술 15년전'이었다.
돌이켜보면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강했던 1980년대의 시대 상황에서 미술에 있어서의 현실적 반영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의 민중미술이 한국 사회 전반의 민주화운동과 궤를 같이하면서 단순한 미술적 반응을 넘어 사회의 변화를 구하는 운동을 표방했다는 점에서 다분히 시의성을 가지고 있었고, 민주화라는 목표가 일견 달성되고 난 이후에는 그 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한계 또한 가진 것이었다.
반면 오윤의 판화는 (민중미술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이전이지만) 민중미술을 표방하면서도 시대 상황이라는 시의성보다는 변함없는 한국적 정서의 보편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여태 그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오윤의 건강이 안 좋아졌던, 그리고 반대로 창작력의 절정기인 1983년 작품인 '할머니'를 보면 굵게 표현된 선묘의 질박함과 친숙한 할머니의 주름과 미소가 방학마다 찾았던 시골 외갓집 대청마루에서 손주를 기다리던 외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함이 있다.
미술에 있어 언어 기능의 회복, 즉 삶의 정서를 담아내고자 했던 오윤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