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그림에는 바람이 분다 - 강요배

by 밤과 꿈


"샛바람이 지나면 마파람이 불어온다. 이번에는 갈바람이 불고 이윽고 하늬바람이 몰아친다."


강요배 '노야(老野)', 캔버스에 유채, 2011년


강요배(1952~ )의 그림에서는 언제나 바람이 분다.

화가는 자신의 가슴 한복판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 무엇이, 그 "똬리에서 울리는 소리를 따라 방황해 온 궤적의 흔적"이 바로 자신의 그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화가의 가슴에 응어리처럼 똬리를 튼 그 무엇도, 가슴을 울리는 소리와 그 소리를 좇아 방황해온 궤적도 바람이지 않았을까.

'별 흐름'이란 그림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노야(老野), 늙은 들판이라는 이 그림에서도 바람이 분다. 퇴락한 들판에 바람이 불어 시든 잡초를 이리저리 헤집어 놓는다. 그래도 바람을 이기고 생명을 이어가는 흰꽃의 아우성이 들린다.


강요배는 제주의 화가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미술대학을 나오고 20여 년을 객지에서 살다 다시 고향인 제주에 정착, 제주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강요배가 그리는 제주의 풍경은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풍경이 아닌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가 그리는 풍경에는 제주라는 섬의 변화무쌍한 자연뿐만 아니라 섬사람들의 고달픈 삶의 궤적과 아픈 역사가 함축되어 있는 풍경이다.

강요배의 그림이 보여주는 스펙트럼의 폭이 넓은 편인데 그의 풍경화 중에서도 이 그림처럼 형태소를 지워가면서 추상에 근접한 그림일수록 화가의 심상을 많이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강요배의 풍경화를 볼 때 표현주의적인 면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추구하는 그림의 근본은 리얼리즘 미술에 있다고 할 것이다.


사실 강요배는 1980년대에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참여한 민중미술 계열의 화가로 리얼리즘 양식을 그림의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특히 하나의 주제를 선택, 연작으로 그리는 주제화로 알려진 대표적인 민중 화가이다. 1989년에 시작하여 3년 간의 작업으로 탄생한 '제주 민중 항쟁사' 연작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1993년 고향 제주에 정착한 후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줄곧 그려온 강요배에게 있어서 그림은 단순히 자연을 그린 풍경이 아니라 제주도에 터 잡고 고되게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그린 인문학적인 풍경이요, 현대사에 있어서 4.3 민중항쟁을 비롯한 수탈의 역사를 그린 역사적 풍경을 담은 다면적인 풍경화라는 것이 내가 강요배의 그림에 가지는 생각이다.

실제 4.3 민중항쟁사를 주제로 한 연작 '동백꽃 지다'에서는 풍경화의 형태로 역사적 사실을 묘사한 그림이 적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강요배의 그림에 있어서 풍경화의 개념은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불어 강요배의 그림에 있어서 바람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화가 자신의 글에서 제주의 바람에 대하여 집요하게 언급하고 있고, 또 제주라는 섬의 바람이 워낙 유명한 것이기도 하지만 강요배의 그림에 있어 바람은 그림의 주제에 생기를 더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4.3 민중 항쟁과 같은 주제의 그림에 있어 바람은 야만적인 역사의 광풍을, 거친 바다의 파도는 거친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민중의 애환을 표현하여 주제에 실감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인용한 화가의 글 "샛바람이 지나면 마파람이 불어온다. 이번에는 갈바람이 불고 이윽고 하늬바람이 몰아친다."와 같이 바람은 바람으로부터 봄이 시작되고 끝으로 겨울을 맞이하는 제주에서의 삶을 설명하는 표상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