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인간을 그리다 - 황용엽

by 밤과 꿈


"인간성의 추구는 내 화필이 꺾이지 않는 한 결코 변할 수 없는 나의 명제"


그런 날, 캔버스에 유채, 1990년


황용엽(1931~ )의 그림을 처음 접했던 것이 화가가 1989년 제1회 이중섭 미술상의 수상작가로 선정된 후 이듬해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린 초대전에서였다.

당시에 대형의 화폭에 담긴 인간의 왜곡된 모습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 글을 위해 그때의 전시 도록을 찾아보았지만 분실했는지 흔적이 없어 아쉬움이 크다.

황용엽은 평양에서 태어나 미술학교를 다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월남, 생존을 위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1957년에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했다.

이후에 황용엽은 시류에 영합하거나 화단의 집단적 동향에 휩쓸리는 것 없이 인간을 대상으로 한 독자적인 회화의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황용엽의 그림은 전후 공간의 혼란이 채 가시지 않은 시대상을 반영한 듯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드러나는 비극적인 인간상을 화폭에 구현하는 것이었다. 붉은 색체가 주조를 이루는 어두운 화면과 전쟁의 폐허를 연상케 하는, 찢겨 나간 듯한 인간상이 시대의 비극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잔인하고 비굴하게 변해가는 인간의 본성과 가족의 이별과 같은 화가의 체험이 그의 그림 속에 녹아들어 간 결과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회색조의 모노톤으로 색조가 변하면서 사각형의 도형 속에 갇힌 듯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그 또한 군사 독재의 시대상을 반영, 억눌린 인간상을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제1회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한 이후 황용엽의 그림에는 이전의 그림과는 다른 변화가 발견된다. 우선 화면이 밝아진다. 그리고 왜곡되고 정지된 인간의 형상에 동적인 방향성이 첨가된다. 이전의 그림에서 보이던 거침이 많이 순화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사마귀를 닮은 듯한 인물의 왜곡은 여전하지만 이 시기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에는 어떤 여유로움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고구려의 벽화를 연상시키는 문양(이 그림에서는 등고선처럼 중첩되어 표현된 산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하는 등 한국적인 제재를 화면에 담고자 했다.

이러한 화풍의 변화는 재야 작가로서 오랫동안 인간의 형상화라는 자신의 예술을 외롭게 추구해왔던 화가의 고집과 수고가 이중섭 미술상으로 비로소 제대로 평가받게 되었다는 개인적인 변화도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가 빠르게 변화를 이루어온 결과도 작용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에는 지워지지 않을 상흔이 느껴지기도 한다. 먼저, 그의 그림을 가로로 구획하고 있는 선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시기의 그림에 등장하는 선에 대하여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한계"라는 비평적 해석이 있다. 그러나 좀 더 실제적인 해석을 해 본다면 이산의 아픔을 가진 화가에게 불가항력으로 다가오는 분단의 상징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그림에는 왜곡된 인간과, 두터운 마티에르가 효과를 더한 메마른 풍경에 갇혀 있다.

이전의 그림에서와 같이 도형에 갇힌 절박한 인간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그의 그림에는 인간의 해방을 제어하는 조건이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것을 화가의 삶과 결부해볼 때 그 조건은 분단이라는 현실이 아닐까.

"내 작품이 곧 삶의 증언"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던 화가에게 있어서 작품 세계의 변천 과정은 전쟁으로 인한 처절한 삶의 기록에서 불행으로부터 벗어나는 치유의 과정이겠지만 그의 예술과 삶을 형성한 원형상으로서의 분단의 우울한 기억만큼은 지울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