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검정색 반팔 티셔츠 어딨어요!? 내 겨울 니트들은 다 어디에 있지? 엄마, 내 수영복은 어딨어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여기저기서 나를 찾아댄다.
겨울에서...이제 봄! 그러니 또시작 될 것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아니 아이 낳기 전까지만 해도 사회책에 나와 있는 말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다양한 계절을 사랑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족들이 나를 이렇게 찾아대니 참으로 귀찮다. 가뜩이나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돌아가는 하루, 일주일, 한 달인데 계절까지 자꾸 바뀐다. 시시때때로 붙박이장 한 켠에 다른 계절들 옷을 잔뜩 꺼내 한바탕 옷장을 정리한다고 야단이다. 그뿐인가. 그 계절에 맞는 옷가지들을 구비하느라 돈도 많이 써야 한다. 아이들은 쑥쑥 자라 그 계절이 되면 자꾸 필요한 것들이 생기고, 엄마인 나는 입을 옷이 없는 슬픔을 일 년에 네 번이나 맞이(?)한다. 옷장 정리를 하다가 괜히 심퉁이 난다. ‘계절 하나로 통일 좀 하면 안 되나?’하고 혼잣말을 하며.
그런데, ‘우리나라가 계절이 단 하나라면?’라고 잠시 가정을 해보니 생각만큼 좋지가 않다. 전혀 행복하지 않다. 당연하게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맞고, 그 속에서 살았던 기억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역마살 있는 아버지 영향 때문인가, 그냥 타고난 나의 성향 탓인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는 주말마다, 계절마다 아버지의 ‘오늘도 떠나자’ 모토를 내 신념으로 삼아 산으로, 들로 그렇게 다녔다. 40대 아줌마가 된 지금의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계절마다 계절이 주는 색을 찾아 자연으로 떠나야 살 것 같다. 남편, 아이들, 각종 상황, 더욱이 코로나 상황 때문에 묶여 못할 뿐이지.
봄. 온 세상이 꽃이다. 흔하디흔한 개나리가 지천으로 깔리는 것도 좋고 벚꽃 비를 맞는 것도 너무 좋다. 어릴 때 사진에서는 왜 그리 귀 옆에 진달래를 꽂고 바보같이 웃는 모습이 많은지. 회사에서 봄마다 팀별로 벚꽃 사진전을 했었는데, 상금 좀 타보겠다고 팀원들과 말뚝박기를 했던 장면도 떠오른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꽃구경은 해야겠다며 남편을 졸라 유례없던 비대면 차 속 꽃 나들이도 당시 기억과 달리 추억의 한자락이 되었다.
여름. ‘나는 아무래도 겨울이 더 좋은 것 같다’라며 인간의 간사한 변덕을 여실히 보여주는 몹시도 뜨거운 계절. 하지만 소금강에서 나뭇가지에 고기를 걸어 가재를 잡던 계절도, 서걱서걱 썰은 수박을, 예쁜 손녀에게 씨를 골라 빠알간 속살을 입에 넣어주시던 할머니의 기억이 있는 계절도, 올림픽공원에서 우산을 접고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를 아이와 둘이 옴팡 맞으며 뛰어다니던 기억이 있는 계절도 모두 여름이다.
가을. 유난히 가을 타고 센치 해지는 나를 만드는 계절이다. 자연스럽게 음악도, 책도 더 많이 듣고, 읽게 된다. 평소 쳐다도 안 보던 시집도 꺼내 읽으니 말이다. 도저히 끝이 없어 보이는 가을 창공. 그리고 자연이 만들어내는 ‘불잔치’를 보기 위해 청계산, 도봉산, 설악산에 각종 숲을 다니던 기억. 나는 꼭 가을에 버버리 옷깃을 세워야겠다며 찐 버버리를 사내라고 억지를 부리던 기억도, 바이브의 ‘가을 타나 봐’ 음악을 듣는 나를 보며 ‘엄마도 가을 타요? 나도 타는데….’ 사춘기 아들과 뭔가 함께 비밀이라도 공유한 듯 웃던 기억도 모두 가을이 만들어냈다.
겨울. 과연 나는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하는 것이 맞는가? ‘추워 죽겠다’를 입에 달고 살며 잔뜩 움츠리게 하는 계절이지만, 가장 신나는 기억들이 많은 계절이기도 하다. 산을 좋아하시는 아빠를 따라 올라간 겨울 산에 있던 나의 천연 썰매장. 그곳에서 난 쌀 포대를 엉덩이 밑에 깔고 신나게 눈 쌓인 산을 내려왔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산에서 구워 먹던 고구마도 겨울의 추억을 메우고 있다. 당시엔 멋져 보였던 보드 잘 타는 남편을 만난 계절도 겨울이었고, 아이들과 눈으로 이글루를 만들었던, 못난이 눈사람들을 만들었던, 퇴근하고 맨손으로 아이와 눈싸움을 했던 시리지만 예쁜 기억도 다 겨울에 만들어졌다.
물론 기억은, 추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고 포장이 되어 사실과 달리 저장될 수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누린 다양성 그 사계절의 힘은 우리 몸 어느 세포 하나하나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 힘이 오늘의 우리를 살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자 이제 옷장 정리하면서 나는 ‘에잇’ 이 아니라 ‘고마워 계절아!’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