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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 Dec 03. 2020

캘리포니아는 역시 사막이었다.

캠핑카 여행 30번째_안자 보레고 주립공원


가을이 한창인 10월, 여전히 물러날 줄 모르는 더위가 버티고 있는 주말이다. 그래도 감히 여름에는 엄두를 못 냈을 사막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남캘리포니아에서 봄이면 야생화로 유명하다는 안자 보레고(Anza Borrego) 주립공원이다. 


집에서 비교적 아주 가까운 곳으로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주립공원이다. 워낙 넓은 땅 캘리포니아에서는 여행하기가 만만치 않다. 온천으로 유명한 워너스 프링스로부터 안자 보레고로 들어가는 길을 차를 몰고 들어가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앞으로 내리막이라는 주의 표지판이 보이고 나서부터 나오는 풍경은 마치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돌바위가 눈같이 흩뿌려져 박혀있는 산들을 굽이굽이 내려가다 보면 산아래 펼쳐지는 시야는 광활하다 못해 미지의 세상 같다. 흡사 지구 상에 그 어느 곳도 아닌 세계로 가라앉는 느낌이랄까.


산아래로 향하는 커브를 돌 때는 낭떠러지 세상으로 내리 꽂히는 느낌이 들다가 다시 내리막길에서는 아래 세상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것만 같다. 그렇게 번갈아 가며 커브를 돌다 짐짓 빨려 들어가지 않겠다는 듯 목을 뻣뻣하게 힘주게 된다. 순간, 내려다본 세상은 좀 전까지의 내가 지나온 그곳이 캘리포니아가 맞는 걸까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마치 어느 별, 화성에라도 떨어진 듯하다.


안자 보레고 주립공원이 (Anza Borrego) 자리하고 있는 보레고 스프링스(Borrego Springs)는 뿔 달린 산양, 빅혼(Big Horn)의 스페인어 ‘보레고’에서 따온 말이란다. 짐작하듯이 커다랗고 둥글게 뿔 달린 양이 많다는 곳이지만 아쉽게도 주말 나들이 도시 여행객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항상 그렇듯 미국 국립공원이나 주립공원에서의 시작은 비지터 센터다. 

우선 지도를 받고 무엇을 보아야 할지를 모두 알려주는 시작점 같은 곳이다. 미국 내 어디든 비지터 센터의 모습은 비슷하다. 베이지색 유니폼을 입고 보기 좋게 검게 그을린 단단한 몸매를 한 레인저들이 있다. 자연을 찾아온 어설픈 이들에게 친절하게 긍지에 찬 모습으로 설명을 해준다. 


안자 보레고에서도 곧장 비지터 센터 주차장에 닿은 우리는 하지만 건물을 찾기 어려웠다. 자연과 어우러져 결코 튀지 않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비지터센터는 주차장에서 입구를 뒤로하고 땅 밑에 들어가 있다. 푯말은 비지터센터에 도착했으나 건물이 눈에 띄지 않는 구조다. 자연 중심의 이런 보호가 참 깊은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자연의 주인은 동물들이고 사람은 남의 집에 잠시 들어가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등산객의 옷도 튀지 않으며 산 정상을 올랐다고 해서 절대 '야호' 소리치지 않는다. 


드넓은 안자 보레고 사막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돌과 흙이 대부분이다. 군데군데 바짝 말라 비리비리한 선인장만 빼면 흡사 화성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둘러보면 물이 흘러 생긴 골짜기도 있고 산야도 있다.


하루를 보내고 RV캠핑장에서 맞이하는 사막의 노을은 연신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하루 동안 빛을 다 내뿜은 해는 가고 노을빛 위로 달이 떠오르는 오늘은 마침 보름이다.



이른 아침, 창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듯 스위치백으로 지그재그 오르다 보면 쑥쑥 내려앉는 땅 아래가 멀어져만 간다. 짧은 왕복 1마일로 챙기기에는 너무 과분한 정상이며 경치를 선사받는다. 잠시만 오르면 세상을 다 내려다볼 수 있는 파노라믹 오버룩 트레일이다.


안자 보레고에서 대표적인 팜 캐년 트레일

돌무더기 산에 흐릿하게 그어있는 팜 캐년 트레일을 오르다 보면 비현실적인 팜트리 타운을 만난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싶다. 올해 1월 이유모를 불로 팜트리들이 불탔지만 다행히도 기둥만 검게 그을리고 잎들이 살아났다는 레인저의 말을 들었다. 올해는 참으로 캘리포니아가 산불로 고통받는 해인가 싶다.

양쪽 산을 끼고 골짜기로 모아지는 한철 내리는 빗물이 그나마 이 캐년의 팜트리를 살리고 있는 듯하다. 이제 우기가 거의 다 되어간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최대한 저 땅 밑에서 뿌리를 갈래갈래 뻗으며 물을 찾고 있을 화상 입은 팜트리들이 잘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메탈 아티스트 Ricardo Breceda의 작품들

안자 보레고에는 수십 개의 스카이 아트 (Sky Art Sculptures) 금속조각으로 또 다른 볼거리를 준다. 수백만 년 전 이 사막에 주인이었을 것 같은 동물에서 시작된 작품들이다. 메탈 아티스트인 Ricardo Breceda의 작품 중 대표적인 350피트 길이의 용은 해 질 무렵 압권이었다. 구름과 지는 해가 빚어낸 불을 뿜는 하늘은 완벽하게 용과 하나가 되었다. 지는 해가 연출하는, 너무 일찍 끝나 버리는 아쉽기만 한 한 편의 짧은 영상이다. 아마도 매일 같은 영상은 없을 듯하다. 내일은 또 다른 하늘이 만들어내는 영상이 펼쳐지겠지.




헬홀 캐년(Hellhole Canyon)

이른 아침 해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세상을 내 테두리 안에 넣겠다는 듯이 빛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땅도 빛에 드러나고 산도 햇살에 물감이 번지듯 솟아오른다. 어제저녁엔 둥그렇게 당당히 떠오르던 달이 이제 조그맣게 사라져 갈 준비를 하는 아침이다.

아침이 땅도 깨우고 나무 없는 산도 깨우는 아침 일찍 우린 헬홀 캐년(Hellhole Canyon)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막 뜨기 시작하는 태양은 모든 세상의 사물을 길게 잡아끌고 간다. 마른 들판의 선인장도 키 작은 나도 키다리 아저씨 마냥 아침 해에 길게 끌려가고 있다.




워낙 마른땅이고 덥다 보니 물을 꼭 지참하고 가야 한다는 안내문이 많다. 심지어 ‘물을 충분히 안 가져가서 죽은 자’라며 돌무덤에 나무 묘비까지 만들어놓고 유머러스하게 경고하고 있다. 경고하는 것 하나에도 미국인들의 유머가 미소 짓게 한다.

주말을 보낸 우리는 들어갈 때와 같은 길로 아래 세상에서 다시 하늘로 뛰어오를 듯 고개를 돌아 돌아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다음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필 봄의 안자 보레고를 약속하며 다시금 인간세상으로 나오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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