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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씽 Aug 17. 2016

장애인 탈시설 기금, 탈시설 장애인 손으로 만들다

8년간 수급비 모아 2천만 원 기금 내놓은 탈시설 장애인 꽃님씨 이야기

2005년 12월 경남 함안군에 살던 조태광 씨는 강추위에 수도배관이 동파되며 들어온 물이 방 안으로 흘러들어왔지만 움직일 수가 없어서 동사했다. 어떤 이는 얼굴 앞에 쏟아진 물을 피하지 못해 익사하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10미터도 안되는 거리를 기어나오지 못해 화마에 타 죽기도 하고, 목에 걸린 가래를 빼지 못해 죽은 이도 있었다.  


활동보조(지원)를 받지 못해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숱하게 있던 시절, 중증장애가 있는 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평생을 방안에 처박혀 있거나, 장애인 생활시설로 가거나.   

 

2007년도, 10년 전 장애계는 생존을 위해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를 위한 투쟁이 한창이었다. 


하루라도 인간답게, 자유롭게 살고 싶었어

김선심. 

그를 처음 만난 건 2007년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투쟁이 한창이던 어느 집회 현장에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목이 긴 의료용 휠체어를 타고 집회 현장에 참석하던 모습은 자연스레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다른 활동가를 통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레퍼토리 마냥, 방구석에서만 틀어박혀 40여 년을 살아오다 시설로 갈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서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다 실태조사 차 방문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에게 '탈시설'을 요청했다고. 

하지만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수급자 신분부터 살 곳, 생활할 방법 어느 하나 준비 안된 상황서 탈시설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기에 어렵사리 임시 거처를 구했고 활동가들이 돌아가며 활동보조(지원)인을 자처한 덕에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지원한 첫 번째 탈시설 장애인이 탄생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서로 지쳐가던 때로 기억한다. 


전국에서 삭발하기 위해 모인 이들. 그들 가운데 선심씨의 모습도 보인다 @전진호 
대부분의 중증장애인들은 짧은 머리를 싫어한다.@전진호
'관리하기 손쉽다'는 이유로 타의에 의해 짧은 머리스타일로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전진호
그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심정은 어땠을까. @전진호
'사랑하는 이와 춤추고 싶다'던, 지금은 고인이 된 박홍구 활동가도 이날 삭발식에 함께했다 @전진호


2007년 1월, 당시 국가인권위 앞에서 활동보조인서비스 권리쟁취를 위한 전국 총력 결의대회가 열렸다. 한쪽에서는 단식을 시작했고, 전국에서 모인 중증장애인 여럿은 삭발을 결의했다. 


가만히 서있기도 힘들 만큼 추운 날씨로 기억한다. 

마감 기간이었지만 이 취재를 놓칠 수 없어서 인권위 앞 카페에서 교정지를 펼쳐놓고 원고보다 집회 취재하다 문득 선심씨가 눈에 들어왔다. 


속칭 장판 기자로 일하며 수많은 삭발식과 참석자들의 눈물을 봤지만 그날의 느낌은 아직 생생할 만큼 달랐다.

살려달라는 몸부림, 울부짖음... 선심씨 아니 선심 언니를 비롯한 모인 이들의 절박함과 한을 담은 목소리, 평생 맺혀있던 응어리를 쏟아내는 듯한 절규를 목격하며 가슴이 먹먹했다. 


부족하나마 활동보조서비스가 제도화됐고, 자립생활센터들이 확산되며 집 밖 출입조차 불가능했던 중증장애인들도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고, (여전히 부족하나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때 그렇게 만나 '언제고 소주 한잔 하자' 말만 하다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에 대한 기억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절규하는 선심씨.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전진호


니들이 이뻐서 주는 거 아니다. 니들이 나 데리고 나왔듯이, 가서 한 사람이라도 더 데리고 나와. 가는데 차비 써. 그러라고 주는 거야

잊고 있던 선심씨에 대한 기억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를 통해 다시 떠올랐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립생활을 해온 지 10년,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인 선심씨가 탈시설할 장애인을 위해 거금을 내놓았단다. 

8년여간 매달 20만 원씩, 먹을 것 입을 것 아껴가며 악착같이 모은 돈 2천만 원을 자신의 탈시설을 지원했던 노들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 내놓았다고.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기에 그 돈을 받을 수 없었던 활동가들이었지만 '장애인도 쓸모 있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고 싶다'는 선심씨의 뜻에 따라 돈을 받는 대신 그와 같이 탈시설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마중물이 될 '탈시설-자립생활 <꽃님기금>'을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울컥했다.  


그가 삭발한 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원하는 만큼의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없고, 오히려 장애등급 하락으로 대상자에서 탈락하기도 하고, 죽음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여전히 활동가들과 당사자들은 길거리에 서있고, 굶고 삭발을 불사하며 싸우고 있고. 허나 분명한 건 이들의 질긴 몸부림이 있었기에 부족하나마 장애인 복지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진일보할 수 있었다는 것. 중증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의 삶도 여전히 요원하지만, 선심씨가 그랬던 것처럼 피와 땀이 서린 '꽃님기금'은이땅의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에 귀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탈시설-자립생활 <꽃님기금>  기부식 및 발족식

일시: 2016년 8월 18일(목) 오후 3시 

장소: 노들장애인야학 4층 

주최: <꽃님기금>위원회 (사단법인 노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 꽃님기금 홍보 카드뉴스 : http://nodl.or.kr/nodl_data/event/bi/bt.html

▶ 한겨레 21 [세상읽기] 홍은전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28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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