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40에는 당연히 아이가 둘인 엄마가 되어 있을 줄 알았어”
아침 7시 50분 5호선 신정역 김밥천국 앞에서 우리 반 대명이와 문경이를 내 차에 태운다. 학교까지 가는 방향이 같아서 카풀(car pool)을 시작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면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수행평가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모처럼 등교 수업이 진행되는 날이다. 오랜만에 등교라 설렐 법도 한데, 겨울 동(冬) 장군 기세 때문인지 내 휴대폰엔 ‘조금 늦는다’는 지각생들의 연락이 아침부터 빗발친다. 그 지각생 중 한 명이 문경이다. 어쩔 수 없이 대명이만 태우고 출발한다.
대명이는 못 본 사이, 부쩍 키가 큰 느낌이다. 겉보기에는 이미 다 큰 성인인데, 보송보송한 토끼털 귀마개로 10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영락없는 18세 소년이다. 학교까지는 교통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5~20분 정도 소요된다. 대명이가 보조석에서 듣고 싶은 음악을 틀면, 차 안은 라디오 부스가 된다. 토끼털 귀마개가 마치 라디오 DJ의 헤드셋처럼 대명이랑 참 잘 어울린다. 대명이의 선곡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그루브가 섞여 있어서 아침 출근길 분위기를 한결 가볍게 한다. 우연히 알게 된 음악 속 가사가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할 때가 있다.
‘전부 문제 같아~ 정답을 알아도~ 풀 수 없는 문제 같아~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가 문제~.’ 상황과 너무도 딱 맞는 선곡 솜씨에 엄지손가락이 절로 치켜 올라간다. <쇼미 더 머니 8> 본선 8강에서 서동현이 부른 경연 곡으로 대치동 학원가에서 문제 푸는 것으로는 삶의 방향을 찾기 힘들고, 본인은 음악을 정말 하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고백하는 자서전적 가사를 담고 있다. 한번 꽂히면 질릴 때까지 무한 반복해서 듣는 스타일을 고수하는 나는 그 후 약 한 달 동안 ‘문제’와 함께 지냈다. TV 경연 프로그램 중 <고등 래퍼>와 <쇼미 더 머니>는 꼭 챙겨 본다. 자신의 생각을 가사로 창작해내고 이를 음악으로 승화시켜 대중과 소통하는 과정은 우승자가 누구인가 보다는 그 과정 자체가 그들에게는 행복이다. 하고 싶은 걸 제대로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은 감동을 넘어 잃어버린 열정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대명: 선생님,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18세예요. 문제예요, 문제.
선생님(나): 내 나이 40에는 당연히 아이가 둘인 엄마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문제다 문제.
세상에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많다. 시간이 갈수록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 당연한 건 없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더 많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 나이 듦이다. 아무것도 안 했다는 걸 본인이 인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지금부터 뭐라도 하면 되니까. 결혼과 출산은 나만의 노력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문제라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온전한 내 탓이 아니니까.
세상에는 풀기 쉬운 문제들도 있다.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시간을 쏟는 것보다는 쉽게 풀리는 문제들부터 해결해 나가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조금씩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