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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윤서 Feb 17. 2021

장군님 웃음소리


엄마: "에구~ 넌 좀 웃을 때 조용히 다소곳하게 좀 웃어라." 

아빠: "뭘 애한테 웃는 것 가지고 뭐라 그래? 

        인생 살다 보면 힘든 일도 많을 텐데 웃을 때라도 맘껏 웃게 놔둬."


 한 번 웃을 때면 온 힘을 배에서부터 끌어올려 내뱉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갖고 있는 나에게 엄마, 아빠가 한 마디씩 하신다. 웃음소리 하나를 두고도, 이를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다른 시각이 사뭇 느껴진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지만 엄마의 표현은 여자아이는 얌전하고 다소곳해야 한다는 성고정 관념에 입각한 발언이다. 성장 과정 중에 부모의 교육관 차이로 인해 부부갈등이 심화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했다. 우리 집은 가부장적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대부분은 아빠의 주도적인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편이다. 나중에 커서 나의 본래 그대로의 모습 그 자체를 인정해주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성을 만나 행복하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 엄마를 납득시킨 것이다. 성장과정 속에서는 내 웃음소리로 인해 스트레스나 불편한 사항을 겪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래에서 소개할 두 가지 에피소드를 겪게 되면서 내 웃음소리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첫 번째는 소개팅 때 경험한 일이다. 대학시절 소개팅을 하면 1차는 조용한 레스토랑에 가서 파스타를 먹는 것이 거의 정석이었다. 이 날은 남자분이 꽤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장소를 잡아서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하필 스테이크 고기가 잘 안 썰리는 것이다. 하두 고기다 안 썰려서 난감해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웨이터가 말없이 다가와 칼날 방향을 180도로 획 뒤집어 바꿔주고 가는 것이다. 긴장한 탓인지 칼날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썰고 있어서 고기가 짓눌리기만 할 뿐 썰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상황이 너무 멋쩍어서 웃는다는 게 '호호호'가 아니라 '우하하하하하하하하' 평상시 웃는 대로 호탕한 웃음을 선보였더니, 소개팅남이 꽤 당황해하면서 동공이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상태로 바라보던 생각이 난다. "윤서 씨, 웃음소리가 완전히 장군이네요. 하하하"  그 뒤로 소개팅남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점점 사이가 멀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유학이 멀어지게 된 원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괜한 기분 탓일까? 




 두 번째는 호주에서 어학연수했던 시절이다. 1년 동안 어학연수를 통해 태솔 코스를 마무리하고 마지막 환송파티를 하는데 외국인 친구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레이첼~ 네가 떠나면 너의 웃음소리가 너무나 그리울 것 같아. 내 핸드폰에 너의 웃음소리를 녹음해 놓고 싶어. 힘들 때마다 너의 이 웃음소리를 들으면 큰 힘이 될 것 같아. " 라며 본인의 핸드폰에 웃음소리를 녹음해 간 친구가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고유의 웃음소리에 대해 엄마, 아빠의 의견이 이토록 극명하게 나뉘었던 이유를 성인이 되어 여러 상황들을 겪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소개팅남의 동공 지진으로 느꼈듯이, 여자로서의 조신함이 요구되는 자리에서 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부적합할지라도 이 세상 누군가에게는 비타민이 되어줄 웃음소리는 나만의 피로회복제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어필하기 위한 위선의 가면보다는 내면의 자아에게 충실하려 한다. 누군가가 바라는 이성상으로 나의 모습을 억지로 구겨 맞추는 것은 내가 아닌 모습으로 남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에게나 다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진정으로 날 사랑해주는 이성이라면 너의 웃음소리까지 좋아해 줄 거라던 아빠의 예상이 적중했다. 덕분에 내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자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단순해졌다. 시선의 회피나 동공 지진이 일어나지 않고, 내 웃음소리를 매력이라 느끼고 그저 바라보며 곁에서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남자, 지금 곁에 있거나 혹은 곁에 있었던 연인들의 공통점이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함께 웃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함께 나눈 대화, 정서적 교류, 공감, 따뜻함이 그대들과 함께 한 이유였다고. 

사진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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