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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 Mar 20. 2020

선방률 올리기

페터 한트케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읽고

우리는 말과 글로 '호흡'을 한다. 언어생활은 그만큼 익숙하다. 안 하고 살 수 없는 점도 닮았다. 전직 골키퍼, 블로흐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선수 시절 습관이 아직도 남아 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실점하지 않으려면 잠시 후 공이 지나치는 곳에 시선이 가 있어야 했다. 그렇게 늘 어림짐작이다. 직장 상사의 눈빛에서 해고를 읽어내는 '오해 능력'. 의사소통은 쉽지 않다. 특히 긴 문장을 포함한 대화에서 그렇다. 


뭐든 명확할수록 좋다지만, 지나치게 매달릴 땐 문제가 된다. 매사 구분 짓기 좋아하고, 의미를 따져야 한단 강박에 시달리는 블로흐. 신경을 곤두세우고 골일지 아닐지 따져보는 골키퍼의 모습이다. 현실에서 딱 떨어지는 건 잘 없고, 거스르려는 시도는 불안을 가져온다. 그뿐만 아니라 언어의 표피에만 주목할 때, 순간의 흐름을 놓치게 된다. 현재는 '일어나 버리는 것'이다. 통제가 불가능하며, 우연의 요소를 늘 포함한다. 이 점을 무시했기에 삶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했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은 중요한 예였다. 


키커가 한 쪽으로 차려 할 때, 키퍼도 그쪽으로 막을 준비를. 이를 예상한 키커가 반대편으로 차려 한다. 그걸 또 계산한 키퍼도 따라서 몸을 누일 준비를 한다. 이걸 짐작한 키커는 또 (…) 무가치한 헛수고의 반복. 효율성도, 생산성도 없다. 동물 같은 감각이 결정케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여기' 있으면서, 대화의 주체 역할에 착실히 임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가끔은 의미 불명의 발화도 있게 마련이다. 공간과 분위기가 부여하는 맥락을 보아야 한다. 이 노력이 우리의 호흡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선방률이 올라가게 할 것이다. 블로흐의 세계에는 이 복잡하지만 가치 있는 프로세스가 빠져 있었고, 그는 스스로를 새로운 가능성에서 유리시키고 말았다. 


작가의 과장된 상황 설정에 웃음이 났다. 언어의 본질을 따져보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의 문학을 바라보는 시각, 또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이 담긴 작품이었다. 늘 앞서 나가려 하고, 상대방 뜻을 넘겨짚기 좋아하는 나, 비슷한 과오를 범하지 않았나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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