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를 읽고
이 책의 태그 #앤솔러지에세이 #단편에세이집 #여성 #희로애락
p.164 하지만 언니. 어쩌면 언니라는 호칭엔 추운 진실이 있는지도 몰라. 이 사회가 여성의 불행을 연상의 여성에게 내맡기는 식으로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교묘하게 은폐한다는 진실. 그런 사회에서 이미 고군분투하던 여자들이 다른 여자의 불행까지 자기 책임인 양 떠안으려 했다는 진실.
2021년 연말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해가 끝나가는데도 이루어낸 게 없다는 절망감, 그런데도 내년이 왔을 때 무엇을 준비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막막함. 발끝에서 녹아 까맣고 질퍽해진 눈처럼 우울하게 지낼 즈음 이 책을 만났다.
일단 정세랑 작가의 작품이라면 묻고 따지지 않고 사서 탐독하던 시기인지라 사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외에도 좋아하는 여성들의 이름이 표지 곳곳에 보여서 좋았다. 하지만 뒷표지를 닫을 때 즈음에는 알지 못했던 여성 아티스트 혹은 작가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 더 좋았다.
제목부터 흥미롭고 표지부터 키치한 이 책은 뉴스레터 형식으로 연재되었던 에세이를 엮어냈다. 각 작가가 부르는 언니는 지인이기도, 과거의 사람이기도, 미래의 사람이기도 하다. “언니”라는 단어 하나에 이토록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엮여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은 크고 다양하다. 언니는 친구이자 영감이고, 응원이자 희망이며 투쟁이고, 타인이자 나이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나의 언니들, 내가 언니가 돼주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알지도, 만나보지도 못한 숱한 언니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고마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