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립의 순간들⑦: 결혼할 뻔 했다, 아주 큰일 날 뻔

당신은 틀린게 아닙니다.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by 테일러

나는 결혼을 준비하다가
결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 선택은
한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매번 작아지는 내 목소리를 수집한 결과였다.


처음엔 단순히 ‘생각의 차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차이는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되어 있었다.


합의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과,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 약속을 "자기 부모의 말 한 마디"로 쉽게 뒤엎는 태도였다.


내가 두세 번 설득해놓은 이야기도
부모님 말 한 번이면 바뀌고,
그걸 나에게 당연하게 다시 제안해오는 사람.


이건 단순한 의견 충돌이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의 결함이었다.


"우리 엄마가 중요하게 여기는 거니까"
"원래 전통이란 게 그런 거니까"
그런 말로 내 질문을 덮는 사람과
어떻게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하지?

나는 질문할 줄 아는 사람이고,
그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해줄 사람을 원했다.




결혼, 출산, 육아.
이 모든 게 여성에게 더 많은 의무가 부과되는 현실에서
나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말 자체가 허상이라고 느낀다.

"맞벌이는 당연하지"
"일은 절대 쉬면 안 돼"
"우리 엄마도 애 둘 키우면서 평생 일했어"라는 말 뒤엔
‘너도 그렇게 해’라는 무언의 강요가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엔 빠져 있었다.
시댁 챙기기, 제사, 가족 모임, 하루 세끼와 아이 돌봄, 청소, 감정 노동
그 모든 것들은 누가 할 건데?

그는 못 했다.



나보다
그의 일정이 더 중요했다.
그는 매일 밤 11시에 퇴근했고,
주말도 출근했고,
그러면서도 지인과의 모임, 취미, 국토순례 같은 건 빠짐없이 다 해냈다.

"결혼하면 안 할 거야"라는 말은
"지금은 괜찮다"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의 삶에서 나는 늘 다음순위였다.




대화는 줄었다.
함께 웃는 일이 없어졌다.
사진 속 나의 표정이 더 이상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같이 있는 시간이 불편해졌고,
대화는 건조했고,
가치관은 닿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나를 아껴주지 않는 태도들이 쌓였다.

나에게 더 많은 수입을 기대하면서도
정작 돈 쓰는 방식은 고전적인 가치에 기댔다.
투자, 효율, 전략에는 강한 사람이었지만,
감정, 관계, 공감에는 약한 사람이었다.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겠냐’는 말.
‘이 정도는 용서해줘야지’ 하는 말.
그 모든 말이
내 삶을 짓눌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끔찍했던 건,
그가 웃으며 말하던 "출가외인"이라는 농담이었다.

그 말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결혼 생활을 보았다.
그 집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내가 아니라
며느리, 아이 엄마, 사위가 아닌 남편의 부인이 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만두기로 했다.
결혼을.
그리고 그 사람과의 미래를.



나는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시간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랑을 계속 이어가는 대신
나 자신을 더 사랑하기로 했을 뿐이다.


나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고,
내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때로는 멈추는 용기도 필요하다.



혹시 나처럼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계속해서 작아지는 자신의 마음을 느끼고 있다면—

괜찮다.
당신은 틀린 게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일 뿐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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