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박 Apr 28. 2022

돈을 셀 것인가, 글을 쓸 것인가?

수요일이 되기 전에 초고는 써 놔야 한다!!


저 메시지는 생각 주제에 화살처럼 물리적으로 꽂힌다. 오프(OFF)를 모르는 알람 시계처럼 지속적으로 머리를 강타한다. 월요일을 지나 화요일을 지나 수요일도 지나고 밤이 되면 초조한 만큼 거세게 내 심장을 때린다. 시계 초침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랄까?(심지어 우리 집엔 무소음 시계가...) 아, 어떡하지?


작년에 에세이 수업을 마치고 뭉친 6인방이 매주 목요일까지 글 한편씩 올리기로 약속을 하고 여러 달이 지났다. 여태까지 꾸역꾸역 약속은 지키고 있지만 한참 쓰다 보니 쓸 말도 떨어지고 자꾸 초조하기만 하지 잘 안된다. 어떻게든, 뭐라도, 일단 써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쓸수록 일단 보다는 이단 삼단 고민하고 재고 따지느라 애꿎은 시간만 흐른다. 글쓰기에 적응은 했지만 여전히 바쁘게 살다 보니 여유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아니, 바빠서가 아니다. 글쓰기보다 시간을 더 쏟아야 하는 일이 생겨서다.


첫째는 독서다. 오늘도 사적 모임이 있었는데 모임 장소가 남의 집인 바람에 그 집에 꽂힌 책 한 권을 빼들고야 말았다. 넷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 준비로 분주해졌다. 주방도 작고 해서 막간을 이용해서 나는 책을 읽었다. 친구가 '한박은 진짜 활자 중독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누가 마침,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심지어 안 읽은- 책을 거기 꽂아두래? 결국 그 책을 빌리기로 약속하고서야 다시 대화로 스며든 나다. 그렇게 책을 좋아한다. 이틀에 한권은 책을 읽어 내는 모양이다. 읽고 싶은 책은 넘치고 산 책도 넘친다. 오고 있는 책도 있으니 말 다했지.


둘째는 일이다. 내가 운영하는 무인 편의점 이외에도 요즘 덕업 일치의 일환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그게 참 재밌다. 일주일에 딱 두 번, 그마저도 세 시간씩 밖에 안 하지만 그걸 하고 온 날은 에너지가 달리는지, 나름대로의 수고를 인정해서인지 두어 시간은 널브러져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노트북은 내내 잠잠하다.


셋째는 독서모임이다. 오프라인 독서모임만 네 개. 일주일에 하나 꼴로 모여야 한다. 이틀 알바에 하루 수업, 독서모임 하나, 주말엔 가족과 함께, 교회 등 바쁘게 지내다 보면 진격의 목요일은 잽싸게 다가오고 독서모임으로 활달했던 나는 어디로 가고 노트북 앞에서 울고 있는 나만 덩그러니.


게다가 요즘 그림책 큐레이터 수업도 듣고 있다. 간간히 친구들도 만나야지, 남편이 평일에 쉬면 같이 놀기도 해야지. 이건 뭐 글 쓸 환경이 전혀 안되어 있어!!


예전에 에세이 수업 선생님이 우스갯소리로 작가는 좀 외로워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참 맞다. 외로울 짬이 없이 바쁘니까 글은 변비 걸린 것처럼 나오지 않고 우두커니 앉은 변기 아니 자판 앞에서 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형국이다.


 글을 쓰기 전에 나는 내일 발표할 숙제 준비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가져와서 소개하는  숙제다.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찾기 위해 도서관도 갔고, 집에도  권의 그림책이 있어서 뒤적거려 봤다. 발표할  떠는 스타일이어서 일단 메모를  했다. 놓고 가지 않으려고 준비한   권을 내일 가져갈 가방에 넣다가 오늘 가게에서 가져온 현금 봉지를 보았다. 무인 편의점은 기계가 주인의 역할을 해서 돈을 받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돈통을 비워줘야 한다. 삼일에  번씩 통을 비우는데 오늘은 제법 묵직하다.  원짜리와  원짜리는 거스름돈이라 세서 기록한  다시 키오스크에 넣는다. 오백 원짜리와 오천 , 만원 지폐는  펴서 정돈해 입금한다. 귀찮아서 세지 않으면 '거스름돈이  나온다' 전화를 받을  있어서  세서 넉넉하게 갖다 넣는 편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걸   아니라  봉지에서 돈을 꺼내 정성스레 합치고 장부를 작성해야 한다. 아니지, 글쓰기내일 까지라니까?

수요일이 되기 전에 초고는 썼어야 했다.


글은 매일 써야 한다. 하루 다섯 문장이라도 써야 한댔다. 작가는 외로워야 한다. 완전히 공감이지만 나는 너무 바쁘다. 넓게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내 앞으로 날아온 셔틀콕만 피하는 느낌이다. 좁은 식견에 투덜거리는 건 으뜸이고 진짜 해야 할 일 보단 허튼 곳에 눈을 팔고 바쁘네 어쩌네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오늘 좀 기분이 이러구러 하다.


뒤죽박죽 돈이 든 봉지를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제멋대로 구겨지고 섞인 돈들이 마치 나의 일주일 같다. 크기만 봐서는 다 비슷하고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지금의 내 삶과 무지 닮았다. 작다고 내다 버릴 수 없는 것도.

좋아하는 만큼 독서, 일, 글쓰기 모두 포기하고 싶지가 않고 더불어 독서를 위한 모임도, 큐레이터 수업도 끝까지 잘 해내고 싶다. 그러려면 좀 귀찮아도 정리라는 게 필요하다. 좋다고 다 하지 말고 꿈에 더 가까운 것을 위해서 몇 가지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그게 외롭더라도.

그게 꿈이라면서,제대로 된 글쟁이 엄마 되는 거!!


결국 나는 돈 세기 대신 글 쓰기를 택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덕업일치의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