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비가 실수하고 있다
갑자기 포켓몬스터가 붐이다. 다시 붐이라고 해야 맞겠다. 어디든 포켓몬만 있는 것처럼 대 유행이다. 시초는 포켓몬 빵!!
2006년 생인 아들이 어렸을 때도 슈퍼에서 포켓몬 빵이 팔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찾아보니 1999년 최초 출시 이후, 단종과 재출시가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런데 굳이 왜 이제 와서 이리 붐이란 말인가.
아마도 어떤 매체에서 먼저 노출하였을 테고 함께 들어있는 스티커 때문에 빵이 더 유명해졌으며 수요가 늘어나는데 공급이 적다 보니 희소가치가 커졌을 것이다. 게다가 '열일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오는 웰메이드 공고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들이 포켓몬을 수준 높게 그려놓고 그 옆에 '빵이 없다'는 말을 적어 놓은 게 유명세를 탐-이 포켓몬 빵의 인기를 배가 시켰다. 모두가 먹으니 나도 먹고 싶다는 욕망도 한몫했다. 물론 그것들은 SNS의 열차에 올라타 있다.
SNS는 없던 유명세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이 열풍의 주역이 된다. 빠르게 퍼지는 정보와 함께 '나도 먹었다'는 인증은 현대인의 과시욕을 채우기 딱 좋다. 맘 카페에는 '편의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트럭이 도착하면 빵부터 달라고 했다'는 경험담이 올라오고, 대형마트가 오픈하길 기다렸다가 바람같이 달려가 빵을 살 수 있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40일 만에 천만 개가 팔렸다며 연일 올라오는 기사들도 인기몰이에 박차를 가했다.
중1짜리 딸도 '자기 반에 포켓몬 빵을 안 먹은 사람은 극소수이며 자기가 극소수에 포함돼 있고, 로켓단이 제일 맛있고 파이리가 별로라는데 자기는 파이리라도 좋으니 어디 가서 좀 구해오라'라고 말했다.
"엄마, 엄마도 오픈런을 가!!"
포켓몬 빵은 일본에서 저작권을 갖는 캐릭터를 사용한다. 그 빵을 사 먹으면 일본에게 돈을 주는 것과 같다. 나는 딸에게 그런 말을 해주면서 예전에 나더러 유니클로는 가지 말라더니 금방 잊고 그 빵을 먹겠다는 거냐며 설득했다. 딸은 어느 정도는 수긍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도 살짝 '내 딸만 못 먹었다니 웃돈을 주고라도 구해볼까?' 하는 생각이 찾아왔다. 엥? 유니클로는 3년째 안 가면서?
귀여운 것과 추억으로 승부를 보는 바람에 슬쩍 잊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NO, JAPAN'을 외치며 피켓을 들지 않았던가?
우리 아이뿐만은 아닐 것이다. 무인 편의점을 하다보니 청소나 정리를 위해 갔다가 초등학생들을 많이 만난다. 아이들은 희귀 포켓몬 카드를 사기 위해 수십만 원을 썼음을 반성 없이 고백한다. 포켓몬 빵은 어찌된 일인지 너도 나도 먹어봤으며 친구 누가 희귀템을 가지고 있다더라 왕왕 떠든다.
우리 편의점엔 소통하는 칠판이 있는데 한동안 포켓몬 상품 요청이 많았다.
'포켓몬 빵 넣어주세요', '포켓몬 빵 언제 들어올까요?', '포켓몬 카드 팔아주세요!'
마음에 안 든다고 그냥 지워버리면 어린 손님들이 기분 상할 수도 있어서 며칠 동안 '포켓몬 상품은 팔지 않아요'라고 답변을 해도 자꾸 비슷한 요구들이 찾아왔다. 한동안 진짜 판로를 찾아볼까도 고민했었는데 오징어 게임으로 떠들썩할 때 달고나를 그렇게 찾더니, 이젠 거들떠도 안 보는 꼬마 손님들의 경향을 생각할 때 이 붐을 그냥 지나가게 두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너무 유행이다 보니 나도 자꾸 흔들리고 있었다. 이놈의 포켓몬들이 빨리 사라져야 가정에도 사업장에도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았다.
지난 몇 달 부르르 끓어오른 포켓몬 빵 열풍이 양은 냄비처럼 금방 식어버렸다. 대신, 기업들은 식어버린 음식을 포기 않고 다시 끓이기 위해 또 다른 땔감으로 여기저기 불을 피웠다. 포켓몬 빵 제조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계열사의 모든 프로모션을 포켓몬으로 출시했다. 도넛 가게에도 포켓몬 식음료를 포함해 굿즈를 끼워 팔고 있고 자회사의 아이스크림 가게와 베이커리도 마찬가지다. 5월 4일에 D도넛에서 피카추 비치타월 행사를 했는데 아침 7시 30분부터 손님들이 줄을 서 있어, 직원이 매장 불도 다 못 켜고 결재를 진행했다는 웃픈 해프닝도 들었다. 이젠 그 회사 물건이 아니어도 온갖 것에 포켓몬이 등장한다. 문구나 생활용품에도 즐비하다.
솔직히 말하면 일본 애니메이션에 개런티를 줘가며 열풍이 식지 않게 마케팅하는 국내 기업들이 싫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물 들어올 때 젓는 노를 놓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이 멈추자.
소비가 줄어야 한다. 유행과 열풍에 민감한 시대, 너무 빨리 사랑에 빠지느라 자연스럽게 우리는 소비 호구로 전락해 버렸다. SNS에 속고 있다. 나 역시 소비자이면서 판매자로 대열에 합류할까 고민했던 날이 있어 부끄럽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지루한 광경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사실이다. 소비가 실수하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포켓몬 소비, 이제 그만 멈춰!!!
메인 사진 출처 개인 블로그 (꼬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