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바라보는 '친구'라는 관계
모든 인간관계는 홍콩의 빽뺵한 숲 속, 공허한 공터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정말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매우 오랜 시간동안.. "세상엔 결국 나 혼자 남는다" 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었다.
어릴적부터 유난히 이별이 많았다. 마음을 주기 시작하면 늘, 내가 떠나던 혹은 그들이 떠나던 결국 나는 혼자 남겨진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 너무 삶이 퍽퍽해질거라 하늘에서 생각해주셨는지, 많진 않지만 정말 소중하고 좋은 인연들을 선물해주셨다.
하지만, 늘 그랬듯, 20대 초중반에 난 이 인연들과 물리적으로 또 한번 아주 멀리 떨어져 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걸 정리하고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사회생활이 TCK 로 살아가며 고민하고 힘들었던 시간보다 백패, 천배, 만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점점 사회생활을 하며 '좋은 친구', '좋은 인연'을 찾는 것을 염원하는것이 '너무 큰 사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해서 한 10여년간 더더욱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겐 어느 정도 이상의 마음도, 호감도 주지 않고 살았다. 그게 내가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고, 타인에게도 부담감 없는 가장 최적의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와 정해진 일정 선 내에서 '두루두루' 살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떤 사람이 인생으로 걸어들어왔다. 심지어 회사 동료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내 세계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그런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걸어야할지도 솔직히 막막했다.
우선 그녀는 아주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argue를 잘 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많은 경우의 사람들은 내가 한 마디를 하면, 열마디를 하며 반박한다거나, 자기가 얼마나 잘났는지 으스대는게 일반적인데..그녀는 '네. 데드라인이 언제인가요?'라는 한 마디 질문 이외엔 내가 그녀에게 이 업무를 부탁하는 이유도 설명도 묻지 않았다. 그져 그냥 해내고 해내올 뿐이였다.
또한 그녀는 가끔 안쓰러울 정도로 모든 일에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는데... 늘 본인이 한 일의 업무의 정도가 100이라면, 10만 간추려서 이야기를 해버리는 신기한 사람이기도 했다.
뭔가 과묵과 겸손 그 보이지 않는 끈 어딘가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사람같기도 했다. 어떤 프로젝트가 있어 그녀와 백투백 미팅을 하다 갑자기 '이 사람은 자존감이 높아서 구지 자기 자신을 PR하러 다니지 않아도 내면이 행복한건가?' 아님 '자기 인생에 있어, 커리어 욕심이 크게 없는 사람인건가?' 하는 정반대 성향의 두 질문이 나를 궁금의 블랙홀로 몰아 붙여넣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기 자체가 그녀와 가까워질 시기였는지, 그녀와 대화를 하며 풀어나가는 업무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 정도가 흘렀다.
2년 정도를 관찰하고 나니, 이 사람은 '외유내강' 의 소유자인 것 같았고, 위에서 내가 자문했던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 나를 사랑해주는 일이 남에게 인정받는 것 보다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의 결론에 도달했다.
알고 지낸 지 3년 정도 되다 보니, 실제로 마음의 거리도 많이 가까워졌고, 이런 성격의 소유자라면 서로 상처주고 상처 받지 않고 서로가 정한 boundary 내에서 잘 지낼 수 있겠다 싶어, 드디어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었다.
그녀와는 '모든 인간에게는 서사가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결이 비슷해서, 서로가 하는 일이나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정말 건설적이고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조언이나 생각들을 많이 공유하고 논의하는 편이다. 특히, 내가 내 스스로에 있어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면인 '사람에 대한 신뢰'에 대한 부분을 실질적으로 행동으로 믿을 수 있게 보여주는 사람인 동시에, 그렇게 본인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거짓없이 가감없이 보여주는 사람이라 멋지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동시에, 오랜 시간 외면해왔던 '내 꿈'에 대해 진지하게 거진 처음으로 속내를 터 놓은 사람이기도 하고, 그게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아서 놀랐고 재밌기도 했다. 감사한 시간들이라 생각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난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언젠가 이 사람도 떠나가겠지 하는 마음이 문득 들 때가 있어 '이렇게 가까워도 되나', '이렇게 신뢰해도 되나'하는 검정 유혹들이 나를 불러대곤 한다. 근데, 어느날 남편이 이런 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해주었다 - 그녀와 너가 '시절 인연'일지더라도 그 인연 덕분에 인간으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면, 그렇게 믿고 있다면, 일어나지도 않은 의문점에 취해 소중한 인연을 놓치지 말 것.
그래. 구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 맞아.. 여튼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나와 정 반대라고 생각했던 사람, 그리고 죽어도 난 회사 친구 안만들거야 했는데.. 회사 직장 동료와 친구가 되었다는게. 다시 생각해도 신기한데 귀한 일이란 생각이 드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