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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온 Apr 24. 2023

힘들었던 3월을 떠나보내며

'이별, 아픔, 사기'를 한꺼번에 겪을 줄이야

유난히도 춥고 무거운 기운이 가득했던 3월이었다. 슬픔과 어려움은 한 꺼번에 찾아온다는 말을 실감한 동시에, 감정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롤러코스터 타듯 경험했던 한 달 이었다.


2월 말부터 남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부터 입까지 이어지는 신경 경련을 간헐적으로 겪고 있었었다. 구안와사나 뇌졸증의 전조전상일까 맘조리며 걱정하던 중, '안면 경련'이라는 질병명을 받았고, 병원에서는 5일만 입원하면 되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설명해주었다. 5cm 안팎이긴 하지만 두개골을 열어야하는 수술이었기에, 수술 이외의 치료방법을 고려해보기도 했지만, 경련 주기가 점점 짧아짐에 따라, 우리는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남편 수술 전, 상주 보호자 등록을 위해 코로나 검사를 받던 중, 친한 친구의 어머님이 암으로 별세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친구와 어머님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알기에, 어머님이 항암치료를 받던 2년 동안 친구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았기에 장례식장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었다. 살아 생전 너무나도 멋진 어머니였고, 친구였고, 동생이였고, 스승이였던 어머님께서 고통 없이 행복한 가득한 곳으로 가시길 오래도록 기도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남편이 수술을 받았다. 코로나 감염 염려로 인해 수술 당일과 중환자 실에서 회복해야하는 수술 다음 날은 남편 옆에 있을 수 없었다. 수술 후 이틀이 지나서야 머리에 붕대를 칭칭감고 작은 움직임에도 누군가가 귀에서 폭탄을 퍼뜨리는 것 같다며 괴로워하는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의료진들은 간단한 수술이었기 때문에 회복이 빠를 것이라 재차 강조했지만, 간병을 하다 보니 남편의 상태가 어딘가 모르게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 남편의 열이 40도까지 상승하게 되며 나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병원은 코로나를 포함한 몇 몇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했으나 모두 빗나갔다. 결국 4일간의 지속된 검사와 검사와 검사를 거쳐, 남편이 급성 폐렴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불행히도 그 폐렴균이 너무 강해 약을 처방해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무려 18일간 병원에서 지내게 되었고, 남편의 몸과 마음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질 쯤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남편의 컨디션이 조금씩 회복기를 보이기 시작하자, 회사에서 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사실 남편이 수술했던 그 주, 해외출장이 있었다. 글로벌 지사의 임원이 아시아를 방문하게 되어 해당 나라로 출장을 가야 했지만, 이유도 모른 채 열이 40도 이상 올라 힘들어하는 남편을 두고 출장을 갈 수 는 없었다.


남편이 입원해 있는 기간 동안 개인 연차를 소진했기에 일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해외 출장에 대신 가준 동료들에게 고맙고 미안해 주중 주말 없이 새벽 일찍 일어나 업무를 하며 팀을 서포트 했다. 남편이 입원해 있던 동안, 많은 동료들이 고맙다는 말이 미안할 정도로 이해해주고 배려해주고 양해해주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 매니저의 1분기 인사평가가 공유 되었다. 그는 "개인사정에 치우쳐 시니어 레벨들이 참여하는 중요한 미팅에 참여하지 못해 Visibility를 높이지 못했다"라는 다소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었다.


사실 고마운 동료들이 더 많았고 처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기 때문에, 매니저의 피드백에 큰 상처를 받거나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다만, 남편이 아팠던 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는 내 생각, 그리고 당연히 가족을 일보다 우선시 두었던 내 결정이 누군가에게는 아둔하게 보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지구는 둥글고 세상은 넓으니 뭐 그럴 수 있지 뭐.


며칠후, 주변에 작은 문제가 생겨 논의 하고 집에 돌아오던 도중 갑작스럽게 띵똥띵똥 하며 문자가 연이어 오기 시작했다. 확인해보니 내 신용카드를 통해 누군가 불법 해외 결제를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빨리 발견하여 카드 정지 및 피해 신고를 하게 되어 큰 피해는 피할 수 있었지만, 카드사에 해당 불법 해외 결제 건을 신고하자마자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며 발을 심하게 접지르며 넘어졌다.


정형외과 침대에 누워 치료를 받으며 '오늘이 몇 일이지'하고 생각해 보니, 딱 3월 31일이었다. 3월 10일부터 약 20일간 발생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정말 이 모든 일들이 3주 간 다 일어난 거라고?"

"몰랐으니 망정이지, 알았으면 이정도로 지나가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사실 몰랐어서 그나마 조금 수월하게 넘어가긴 했지만, 어렵지 않고 무섭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사실 매일 살얼음을 걷는 느낌이었지만, 주변의 가족, 친구, 동료들이 위로해주고 응원해준 덕분에 이 감사함,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씩씩하게 해쳐나가야겠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건강한 하루에 대한 감사함'에 대한 배움을 곱씹으며, 다시 건강히 집으로 돌아가 일상을 함께할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며 견딜 수 있었다.


힘들었던 3월이 지나간지도 어언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월이라는 터널은 끝났지만, 터널이 준 숙제들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 숙제들을 성실히 끝내나갈 수 있는 마음가짐과 에너지를 잃지 않은 2분기, 3분기가 되었음 좋겠다.


다만, 다시 가족이 갑자기 아프거나, 누군가와 갑작스레 이별을 해야하거나, 사기를 당하는 일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다시 하라면, 아오..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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