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망했어도 그들의 '유전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by 제이미


백제는

망했어도,

그들의 '유전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두꺼운 패딩을 안 입어도 될 만큼 날씨가 포근한 날이었다. 오늘은 어디든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겉옷과 카메라를 챙겨 들고 곧장 집을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부여다. 몇 번이나 답사를 왔던 도시지만, 이번에 가려는 곳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그동안 들르지 못했다.

석탑으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오가는 차도, 사람도 거의 없었다. 부여 시내에서 20분쯤 더 달렸을까, 길 오른편으로 작은 석탑이 눈에 들어왔다. 석탑 옆에는 장독대가 놓여 있고, 그 뒤로는 대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었다. 익숙한 시골 풍경 속에서 석탑만이 어딘가 낯설게 보였다.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제작시기: 고려 시대

소재지: 충남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답사일: 2026년 2월 21일


오늘 찾은 곳은 장하리 삼층석탑이다. 고려 시대에 세워진 석탑으로, 이 자리에는 원래 한산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탑만 홀로 서 있다.


장하리 삼층석탑은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많이 닮았다. 길게 뻗은 처마선, 둥글게 처리된 옥개받침과 탑신받침, 그리고 여러 장의 장대석으로 구성된 기단까지. 백제 석탑의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백제는 멸망했지만, 그들이 남긴 미학적 유전자는 수백 년의 세월을 건너 고려의 석공에게 전해진 셈이다.


탑 주위를 천천히 돌며 세부를 살폈다. 기단부는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짜여 있었다. 통일신라 석탑처럼 정교하게 맞춘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그 대신 소박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옥개석 처마는 수평을 이루며, 치석(돌을 다듬는 것)이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운 선을 이루며 전체적으로 온화한 인상을 준다. 백제 석탑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탑이 세워지기까지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통일신라 하대에 닿는다. 신라 하대, 왕권이 흔들리고 지방 호족의 세력이 성장했다. 그 변화는 고려로 이어지며 석탑의 모습에도 드러난다. 통일신라의 엄격한 비례는 완화되고 구조는 간소해진다. 탱주가 생략되고, 기단이 간소화되며, 옥개받침도 3~4단으로 줄어든다. 생략과 간략화. 이것이 이 시기 석탑의 중요한 특징이다.


장하리 삼층석탑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세워진 탑이다. 호족 세력이 성장하던 시대, 백제의 옛 땅에서 사람들은 옛 양식을 빌려 새로운 시대를 기록했다. 이 탑은 그 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탑 주위를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옆 텃밭에서는 동네아저씨가 밭을 갈고 있었고, 대나무 숲에서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천 년을 넘게 이 자리를 지켜온 탑과,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같은 풍경 안에 놓여 있었다. 생경하지만 정겨운 모습이었다.


작가의 이전글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