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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24. 2021

보수의 나라, 한국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9월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보수가 너무 세기 때문에 20년 집권이 필요합니다. 제도정치권 딱 한 군데만 보수가 약해요. 220년 중에 210년을 집권한 세력이 보수입니다. 경제, 금융, 언론, 이데올로기, 검찰… 사회 거의 모든 영역을 보수가 쥐고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이렇게 균형이 무너진 나라가 없어요."


그렇다. 한국은 보수가 매우 강한 나라다. 선출된 권력인 입법부와 대통령만 진보 우위를 점하고 있을 뿐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직업 공무원, 사법부, 언론은 모두 보수 절대 우위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김경수, 정겸심에 이어 김은경 판결을 보면서 사법부의 보수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24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부분 중 상당 부분이 무죄로 바뀌었지만, 실형을 피하진 못했다. 김은경 전 장관은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을지는 몰라도 전 정권 기준으로 따져 봤을 때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긴 힘들다. 이명박 정부 시절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언론에다 대고 노골적으로 공공기관장들이 사표를 내야 한다고 말했고, 보수 언론들은 코드 인사들은 물러가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박근혜 정부 때는 공기업 사장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되지 않자 검찰에 수사 하명을 내렸다. 한국석유공사 사장 등은 애매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기소됐지만 나중에 무죄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는 심지어 민간 기업인 KT, KT&G 사장이 물러나지 않자 수사를 하게 만들었다. 언론들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논란이 벌어졌을 때 이러한 과거를 철저하게 눈감았다.


정치적 의도를 가진 수사는 법원에서 바로 잡힐 줄 알았다. 1심 재판장이었던 송인권 부장판사는 검찰의 공소장이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했다는 취지로 말하며 공소기각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바뀌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김은경과 정경심의 1심은 같은 재판부가 맡았다. 검찰의 핵심 주장을 대부분 인정하고 두 사람 모두를 법정구속 시켰다. 2심에서 다시 제대로 된 판결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야말로 기대에 그치고 말았다.


보수 정권 시절 사법부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견제했지만, 진보 정권이 들어서는 정권의 견제자로서의 역할을 철저히 하고 있다. 법원행정처 출신이 아닌 비주류 대법원장이 취임하고, 진보 성향 변호사까지 대법관으로 갔다. 거기에 양승태 일파들이 수사를 받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바뀌었지만, 하급심 판결을 담당하는 보수 일색의 판사들이 여전히 사법부의 주축인 것이다.


김경수 대법원 확정 판결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현재 대법관 중 가장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이동원 대법관이 주심을 본 것이 불운이었다. 그렇지만 진보라고 불리는 대법관들이 이렇게 순순히 재판을 확정해 줄지는 몰랐다. 한명숙 재판은 최소한 전원합의체라도 갔다. 정권이 진보 성향으로 불리는 대법관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고, 대법관들도 정권에 특별한 빚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경심, 김은경 대법원 재판은 최소한 전원합의체라도 가야 할 것이다. 김경수 같은 어이 없는 사례는 다시 만들지 않아야 한다. 탄핵이 있었고 민주당이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유례 없는 승리를 거뒀지만 아직 세상이 바뀌려면 멀었다. 대한민국 탄생부터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해찬의 20년 집권론은 당연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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