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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영어 교사 Nov 15. 2020

수업 준비가 무척이나 힘든 어느 일요일 오후

교사 신장개업 선언

어제는 토요일이라 집 근처 고깃집으로 모처럼 와이프와 외식을 하러 갔다.

개업을 한 지 얼마 안 된 집이라 가게 내부는 깔끔했고, 가게 주인 내외는 왠지 상기된 얼굴이었다.

정갈한 밑반찬과 익어가는 고기를 안주 삼아 저녁 내내 즐거웠고,

<오늘 정말 맛있었습니다. 가게가 번창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평소 나 답지 않게 계산을 마치며 가게 사장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감사합니다. 저희 가족이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라는

무척 상투적이지만 진지한 답변을 들었다.


이미지는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



<그래. 음식점은 당연히 저런 마인드로 해야지.>

집을 향해 걸어오면서 와이프와 캔맥주 하나씩 나눠 마시며 이야기했다.

<근데 자기는 수업할 때 어때? 그냥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갑작스러운 와이프의 질문에 허허 웃으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나만큼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어디 있겠냐며 얼버무린다.

얼렁뚱땅 넘어가는 와중에 화끈거리는 얼굴을 보이기 싫어 얼른 집으로 들어가자 보챘다.




수업 준비를 하려고 앉은 일요일 오후

기계처럼 지문에 줄을 치고, 중요한 표현과 단어들을 대충 따로 정리해 놓고선

<자 이번 주 총알도 든든하게 준비했군> 하고는 이불속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지난주에 찍어뒀던 사진을 정리하다

고깃집 사장님의 말과 와이프의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나는 어떤 마인드를 가진 교사일까?

내게는 교사로서의 열정이 있고,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고 있나?>




전에 먹은 점심이 소화가 되면서 졸음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어느 5교시,

왼 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 펜을 돌려가면서

멍하니 칠판 앞 선생님 수업을 관람하다

그때 문득 생각했던 것 같다.

‘아, 나도 선생님이나 해볼까?’


선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게으름이 배어있는 내게 교사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안정된 반복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딱 1년의 수업 준비와 30년간의 무한 반복.

끝도 없는 반복 속에 차츰 올라가는 월급에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주어지는 무한한 권위가

그 해 겨울 사범대학에 지원하도록 이끌었던 것 같다.

그때 내겐 막연한 확신 같은 것이 있었다.

<졸업만 하면 자격증이 나올 테니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한 번의 쉼도 없었고 딱히 실패의 경험도 없었으며, 딱히 큰 보람도 느끼지 못한 20대가 흘러갔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교사로서의 삶은 완만한 반복의 실행은 아니었다.

내용의 학습과 지식의 전달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커서,

거울을 보며 한 두 번 연습을 해보지 않고 수업을 들어갔다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

식은땀과 망신살만 얻고 교실을 나왔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같은 내용을 각 반에서 다르게 전달하고는

반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핑계를 대고는

수업의 질을 높이는 건 너희들이라며

준비의 부족함을 되려 학생들의 과오로 돌린 때를 후회하며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수업을 할 때 놓쳤던 중요한 포인트들이 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 문득 떠올려질 때면

고난도 문제를 내야 학생 변별이 된다느니, 분명히 수업시간에 언급한 적이 있다느니 하며

잘못된 출제가 내 거짓 때문이 아니라고 스스로 변호에 열을 올리곤 했다.




그리고 또 여느 일요일 오후와 똑같이 대충 수업 준비를 하고 책을 덮은 내게는

언제나처럼 후회와 짜증을 등에 업고 교실 문을 나오는 내가 기다리고 있겠지.


언젠가 책에서 안도현 시인이 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답을 하는 문장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고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제 개업하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식당 주인은

가족에게 줄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한다는 말을 했다.


내게는 매일을 먹여야 할 아이들이 있고, 그들에게 불량식품을 먹일지 고루 영양분이 분포된 음식을 먹일지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

교사에게 주어진 50분이라는 시간은

아이들이 건강한 음식과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을지,

입에도 몸에도 맞지 않는 음식에 탈이 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일상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수업도 요리와 같을 수 있다.

좋은 재료들을 준비하고, 먹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재료와 아이들에게 관심이 생기고, 관심은 내게 사랑으로 피어나게 될 것이다.


내가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였던 그 완만한 반복은

정성과 사랑의 반복이 되고, 매일 만족스러운 요리로 가득 찬 50분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고쳐 먹고, 다시 책상에 앉아 수업을 준비한다.




다음 주 나는 신장개업을 한다.

<잘 먹고 갑니다>

<다음에도 만족시켜드리겠습니다.>

들리지 않는 인사로 가득 찬 교실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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