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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영어 교사 Nov 22. 2020

감히 인사를 안 해? 싸가지 없이?

학생의 인사는 그들의 인성을 보여주는 것인가.

<그 새끼들 요즘 인사를 안 해. 고3 됐다고 버르장머리 없이......>

회식 자리가 무르익어가고 다들 술이 얼큰해져 ‘형님, 동생’ 하게 되는 와중이면 늘 교사들의 푸념이 시작된다. 그날따라 술이 취한 2학년 부장이 3학년 아이들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데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다.

<요즘 고3 애들 봤어? 인사를 안 한다고 인사를!>
<맞습니다 형님. 이 새끼들이 고3 되면 다들 싸가지가 없어져 싸가지가...>

뭐, 교사라는 직업도 밖에서 보면 수평적인 구조일 수 있으나 속으로 들어가 보면 여느 직업처럼 계층이 존재한다. 계층 사다리의 아래에는 윗 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존재는 상사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생존 본능에 따른 반응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든지 말든지 체념한 교사도, 그런 아부에 역한 거부감을 품는 교사들이 늘 화학반응을 발생시킨다.


<아니 근데, 선생님은 애들한테 인사 먼저 하세요?>
올해 초 들어온 젊은 일본어 여교사의 대답은 일순간에 시끄럽던 테이블에 정적을 불러왔다.
<선생님께서 인사를 안 하니까 애들도 인사를 안 하는 거 아니에요.>
<허허. 양 선생 왜 그래. 좋은 자리에서.>
<그리고, 애들한테 새끼 새끼 거리시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일 뵐게요.>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자신이 안주거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분명히 했을 듯싶었다. 당돌하다 싶기도 하고, 용감하다 싶기도 한 뒷모습을 보며 어정쩡한 연차에 어정쩡한 사다리 위치에 있는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예상대로 부장의 험담은 인사를 안 하는 애새끼에서 개념 없는 신임 교사로 주제를 옮겨 갔고, 자신을 희생하고 아이들을 지킨 고고한 신임 교사는 내 머릿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인사(人事)’ :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 서로 예를 표함.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 (네이버 국어사전)


인사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마주하거나 헤어질 때 예를 표하는 것이다. 교사가 되면 매일 수 백명의 아이들을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은, 아니 모든 경우 아이들이 인사를 하면, 교사가 답을 한다. 같이 고개를 숙이거나 가볍게 말로 인사를 하거나 하는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인사의 선후 관계, 인과 관계 속 선과 원인은 학생이어야만 한다. 그 선후 관계와 인과 관계의 반복은 교사의 또 다른 직업병을 만들어 낸다. 인사를 깍듯하게 하는 학생은 좋은 학생, 인사도 안 하는 놈들은 개념 없는 놈들. 직업병은 학생에 대한 평가가 되고, 평가는 학생부 작성이라는 무소불위의 권위 속에 은근하게 깔려 스며든다.
‘감히 인사를 안 해?’


내가 인사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사전적 정의에서 그런 것처럼 인사는 ‘서로’ 예를 표하는 행위이다. ‘서로’라는 말에는 선후나 인과가 있을 수 없다. 학생을 정말로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하는 교사라면, 내가 응당 인사를 받아야 할 인물이라는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교사가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이 자신의 자존심과 권위를 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자신에게는 더 이상 교사로서의 자존심과 권위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나, 학생들은 자신에게 먼저 인사하는 선생님을 인간적으로 더 사랑하고, 그런 선생님들께 기쁜 마음으로 인사해 온다. 교사의 권위와 자존심은 이를 통해 올라간다.

둘째, 인사를 안 하는 것은 인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이들은 실제로 매일 수십 번 인사를 한다. 그 대상이 우리가 아닐 뿐이다. 그들의 눈에는 교사가 들어올 자리가 거의 없다. 교사로서 인정하기 쉽지는 않았지만 학교의 중심은 내가 아니었다. 복도를 걸어가는 아이들의 눈에는 게임 이야기나 아이돌 이야기, 성적에 대한 대화를 나눌 만한 친구들이 보이지, 인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고 걸어오는 담임교사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는 각 아이들의 하루 속에 잠깐  출연하는 조연 배우일 뿐이다. 영화를 보며 ‘어 그 사람이 나왔었어? 몰랐어.’라고 생각할 만한 조연배우들. 그리고 그들은 관객의 부주의함을 꾸짖지 않는다. 우리의 인성이 못돼먹었다며 회식자리를 갖지 않는다.




여느 회식자리와 마찬가지로 그 날 일본어 교사의 돌발적 행동은 따끈따끈한 뉴스에서 온기가 살짝 남은 가십거리로, 그리고는 재가되어 교무실 밖으로 날아갔다. 여전히 학교에서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부장 선생님들께 깍듯하게 결재를 부탁드리고 있다. 다음번 회식이 언제냐며, 맛집을 알아보았다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름 신선할 정도로.

하지만 그 선생님이 일으킨 불씨는 내 마음속으로 날아들어왔고, 나는 이 불씨가 꺼져버리지 않게 지켜내고 싶다. 복도를 지나치는,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  아이들의 인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최대한 먼저 밝게 인사를 건네는 ‘싸가지’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매일 개봉되는 수 백 편의 영화 속에서 작지만 비중 있는 조연 배우가 되어 무대 인사를 할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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