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그 이상의 것을 나누는 것
누군가에게 차를 건넬 일이 있다는 건 나에게 참 기쁜 일이다.
후루룩 마셔버리는 그런 음료가 아닌 차를 내리고 천천히 마실 수 있는 차를 낸다는 건, 내게 그 사람이 어느 정도는 또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낳고 나서 차를 맘껏 마시는 일이 줄어들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뜨거운 티포트에 손을 댄다거나, 아끼는 그리고 지금은 다시 구할 수 없는 빈티지 찻잔을 실수로 깨버리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다른 것은 그렇다 치고 아이들이 다칠까 봐 제일 걱정되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육아의 시간이 나의 시간을 잠식해 버려 더 차를 자주 마시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육아를 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는 일이 전보다는 잦아졌다. 그 말은 생각보다 차를 마시고 싶은 기회도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복병은 남편이 아이들을 봐준다면 그나마 차를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차 마시는 일은 엄두도 낼 수 없기도 했다. 그 와중에 차를 마실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얼른 티팟과 찻잔을 내곤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함께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야 가능했다.
그냥 어서 할 말만 하고 갔으면 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차를 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를 마시게 되면서 말이 더 길어지는 게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를 대접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리고 함께 차를 마셨다면 늘 만족스러워 한동안 마음이 따뜻했고, 그 여운으로 그날 밤에는 꼭 나 혼자 혼차를 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기도 했다.
나는 말을 하기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잘 듣기도 그리고 듣는 걸 좋아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차를 낼 때면 내 말을 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좋아진다.
하루는 둘째 아이를 낳고 산후관리 이모님과 함께 생활할 때였다. 서로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서, 조금만 시간 틈이 나면 커피 마시기가 바빴다. 그날 하루를 잘 버티기 위해 결연한 맘으로 마시는 커피였다. 가끔 내가 커피를 사 오기도, 이모님이 사 오시기도 하셨다. 이렇게 커피의 카페인으로 육아로 피곤해지는 하루를 버티다 보니, 차를 하는 엄마가 마시는 걸 보는 첫째 아이는 '커피'라는 단어는 '차'라는 단어보다 더 빠르게 말하게 되었다. 뭔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 하루를 나 나름 피곤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생생하게 지내고 싶다면 커피의 카페인이 꼭 필요했던 터였다.
그렇게 커피를 자주 마시던 나날들이 지나가고, 살뜰히 대해 주시는 이모님께 차를 한잔 대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일 두유에 커피를 타드시던 이모님께 차가 낯설게 느껴지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잠시 동안은 앉아 쉴 수 있는 시간을 우리 두 사람에 주고 싶었었나 보다. 그래서 차 한잔 하기를 여쭈었고 흔쾌히 마시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골랐던 차는 홍차였다. 커피 대신 마시기에 딱이었고, 필요하다면 우유도 넣을 수 있으니 더 좋다 생각했다. 오래간만에 구매했던 영국 브랜드의 홍차였고, 최근에 새로 나온 차여서 차맛이 제대로 나왔을지 걱정되었는데, 우리 두 사람은 한 모금 마시자마자 서로 눈을 마주쳤다.
"홍차, 진짜 오랜만에 마시는데 맛있네요 정말!"
차를 그렇게 내려 마시면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차를 마실 때 이런 피드백이 돌아오면 뭔가 안심이 든다. 혹여나 입맛에 맞지는 않으실까 소소한 걱정이 들기도 하고, 떫은맛이 낯설어 평소에 마시던 커피가 생각나시진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이었다.
젊었을 때 한창 홍차를 마신 적이 있으시다던 이모님께선 그 반가운 맛에 즐거워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아기들이 잠든 사이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모님께선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시고, 언니들 이야기를 하시며 신나게 웃으시기도 하셨다. 눈웃음이 유난히 선하고 밝으신 이모님의 미소가 그날따라 더 밝게 빛나보였다.
차로 강의를 하지 못해, 더 구체적으로는 차와 함께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시간을 갖지 못해 마음 한편이 불편했던 나에게 너무나도 귀중한 순간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기들과 함께 있어야 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차가 있기에 꼭 일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나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순간을 담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모이면 나중에 나의 마음에 큰 자산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차는 나에게 알려주었다. 누군가와 차를 함께 마신다는 것은 차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나누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 순간을 더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을... 이 순간이 모여 나의 마음을 더 깊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