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아들의 책가방엔 실내화가 전부다. 플러스 알파로다 먹다 버린 과자봉지와 잡다한 쓰레기들이 가득한 가방을 뒤집어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퇴근하다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리고 박장대소한다. 유전자의 힘은 위대하다고 사춘기 시절 자기 책가방이랑 똑같은 아들이 놀랍다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이것이 웃을 일인가? 나는 복장이 터질 지경인데 남편은 좋다고 웃는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아이 가방이 이 모양이냐? 이래서 학교 생활은 잘하겠냐? 더 나아가서 대학은 가겠나? 까지 줄줄이 이어질 수도 있는 잔소리 폭탄 대신 웃음 폭탄을 터트려주니 말이다.
저녁을 먹고, 남편이 왜 그렇게 웃었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X세대인 우리가 학교 다닐 땐, 가방 검사가 흔한 일이었다. 남편의 담임선생님은 가방 검사를 하던 중 텅텅 빈 책가방을 보고 ”넌 도대체 가방 안에 뭘 갖고 다니냐? “라는 질문 아닌 비난을 던졌고 남편은 그 순간 대답을 했다.
”제 꿈이요! “
그날 죽도록 맞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들의 빈 책가방을 흐뭇하게 쳐다본다.
그렇게 큰아들은 남편의 유전자를 많이 받았다. 기계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머릿속에 지도가 있는 전형적인 이과생이다.
반면 둘째 아들은 새로운 변화를 싫어하고 음식도 익숙한 것만 먹고 길도 가던 길로만 가며, 한번 익숙해지긴 어려워도 익숙해지면 꾸준히 지속하는 힘을 가진 책을 좋아하는 문과생이다.
둘째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나는 학교에서 손들고 발표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소심한 I형이다. 그런 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용기라는 것을 내 본 순간이 배낭여행이지 않을까 한다
강원도 시골 출신인 나는 여행도 별로 해본 적이 없으며 대학가서도 학교 생활 외에는 특별한 경험을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렇게 평범하게 회사에 취업하고 일을 하던 20대 중반, 3개월 동안 밤을 새우며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서 2주간의 휴가를 받았다
그때 함께 일하던 실장님이 ”휴가동안 뭐 할 거야? “라고 물으셨지만 별다른 계획도 없고 마땅히 뭘 해야 할지도 몰랐던 나는 "글쎄요..."라고 말끝을 흐렸지만 무언가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외로 배낭여행가! 혹시 돈 없으면 빌려줄 테니까~ 꼭 가~” 순간 가슴이 뛰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돈 빌려준다고 해서 뛰었나?*^^*)
그리고 그날 가기로 결정했다. 내돈내산으로다가.
혼자 여행을 가본 적 없는 나는, 그것도 해외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는 정말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해외 배낭여행 관련 카페에 가입하고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두려움과 직면했다. 무.서.웠.다. 카페에 간간이 올라온 소매치기 관련 이야기들이 내가 겨우 꺼낸 용기에 찬물을 확 끼얹었다. 마음속 두려움이 벌벌 떨며 다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혼자 가기엔 너무 위험해!"
"너 영어도 잘 못하잖아"
"겨울이라 유럽에 가봤자 재미도 없어"
"소매치기도 그렇게 많데..."
"그냥 제주도나 갔다 오는 건 어때?"
하지만 웬일인지 나의 용기가 두려움과 맞서서 숙소와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렇게 나의 첫 배낭여행은 20대 중반 어는 겨울날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용기라는 녀석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하는 내내 나는 수많은 용기를 꺼내야 했고 자꾸 꺼내서 사용하다 보니까 이태리에서는 소매치기가 내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서로 쳐다보고 씩 웃을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용기는 여행 마지막날 도를 넘었다.
나의 원래 여행 스케줄은 12월 24일 저녁 비행기로 로마에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12월 24일 로마 바티칸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미사를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어쩌면 평생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사장님께 전화드려 비행기가 연착되어 25일 저녁 비행기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거.짓.말.을.했.다.
하지만 이십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때 한 거짓말이 내 생에 최고의 거짓말이었음을 고백한다.
그 후로 나는 매년 해외로 여행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 오지로 여행을 다니다 아이들을 낳아 시골에 살기도 하고 아이들이 커서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20년 전 그날 용기가 힘을 내지 않았다면 남편을 만나지도 아이들과 이렇게 여행을 다닐 생각도 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한다.
남편은 책가방에 꿈을 넣어 다녔고
나는 배낭에 용기를 넣어 다녔다.
우리 아들들의 가방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분명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있을 거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