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이다.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하는 동안 처음으로 회사 동기 언니가 집에 놀러 왔다. 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제외하고 우리 아이가 집에서 본 첫 외부인이다.
코로나 탓에 유리문 밖에서 면회하는 중/사진=최수진
전염병은 쉽게 잠잠해지지 않았다. 100년 만에 올까 말까 한 바이러스라고 뉴스에서 떠드는 코로나 19와 함께 안전하고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찾는 게 더 빨라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가족 빼고 집에 처음으로 놀러 온 손님이 내 회사 동기 언니다.
애석하게도 코로나 19는 나의 임신, 육아, 출산의 동반자였다. 우주를 훨훨 날아다닐 것만 같았던 2020년이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안전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코로나 19는 나를 끈질기게 따라왔고 지금도 전염병에 쫓기고 있다.
코로나 19 탓에 임신 중 집안에 손님을 부르는 일이 부담이 됐다. 손님을 부르기는커녕, 밖에 돌아다니는 것조차 겁이 났다. 남들 다 간다는 태교여행 한번 못 갔고 하던 필라테스도 접었다. 그 흔한 베이비페어도 가질 못했다. 사진관 가는 것조차 신경 쓰여서 만삭 사진도 없다. 그렇게 열 달을 남편과 집에서만 복닥거리면서 입덧과 전쟁을 치렀다.
코로나 19와 함께하는 출산은 다소 좋았던 측면도 있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코로나 19 때문에 산모 병문안이 안됐던 건 좋았다. 아이를 낳느라고 얼굴에 모든 핏줄이 터지고 배는 시퍼렇게 멍들었던 나였기에 휴식이 절실했는데, 코로나 19는 그 시간을 벌어줬다.
그다음 찾아온 육아. 코로나 19 시대의 육아는절망적이었다. 처음부터 병원 신생아실은 면회를 제한했다. 아이 신생아 사진은 찍어보지도 못했다.아이는 코로나 19 탓에 사람을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한 후부터도 사람을 만나고 관찰할 틈이 없었다. 외출할 때면비말 감염이 될까 봐방풍커버로 꽁꽁 싸맨 유모차를 끌고 밖에 나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일상이 아닌 특별한 일이 됐다. 특히나 마스크를 벗은 사람을 보는 일이 없었다. 아이가 집 밖에서 본 낯선 사람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치 인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마스크를 장착했던 것처럼.
임신 출산 육아 기간을 통틀어 처음으로 놀러 온 동기 언니는 고맙게도 집에 있는 내내 마스크를 했다. 나는 한사코 벗어도 된다고 했지만, 오히려 언니가 이렇게 하는 게 예의라면서 마스크를 했고 아이도 먼발치에서 봤다. 비말이 튈까 봐 먹고 가라는 저녁밥도 먹지 않고 그냥 갔고 손님 준다고 꺼낸 귤도 먹지 않았다.
우리 아이가 지금의 시대를 혹시나 기억한다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마스크를 쓰고 태어나는 줄 알 것 같아 씁쓸하다.태어날 때부터 보는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아이는 그런 사람들을, 또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코로 숨 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는 할까. 어서 빨리 일상을 되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