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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 Nov 01. 2020

나이테를 새기는 시간

PROLOGUE

사람이라면 일정 연령대 마다 지나야 하는 산이 있다.      


학생은 공부를, 대학생은 취업을, 그 이후엔 결혼을 하는 것과 같은. 우리는 인생의 굴곡을 지나면서 때론 뼈를 깎는 고통과 스스로에 대한 좌절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힘들게 사느니 성장하지 않고 도태되고 말지’하고 뻐대다간 등짝 스매싱을 당하며 잔소리를 듣는다.      


- ‘남들도 다 하는 거야’      


그렇다, 남들도 다 똑같이 지나온 시간이다. 세상만사가 불공평하다 해도, 세월은 모두에게 공정하다. 그래서 입을 삐죽 내밀며 억울하다 할 수도 없다.      


언제부턴가 나이 먹기가 싫어졌다. 이런 얘길 어른들에게 하면 ‘고작 이십 대 후반 밖에 안 된 애가’ ‘번데기 앞에 주름 잡는다’고 한 소리 듣는다. 그런데 이룬 것도 없이 나이만 먹는 느낌이 드는 건 오십 대나 이십 대나 비슷하지 않을까. ‘네 나이에 결혼도 했어’ 하는 부모님 세대를 보면 그들만큼도 살아오지 못했단 생각에 한숨을 쉬게 된다. 누구는 일찍이 자가를 마련하고,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도 만나고, 자기 분야에서 프로페셔널한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스스로를 마주할 때면 홀로 뒤쳐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이를 먹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나잇값 하기는 왜 그렇게 어려운지. 직장에서 별 것 아닌 일도 서러워지고, 인간관계에 신물이 나면 다 큰 어른인 걸 잊고 누구에게든 응석부리고 싶어지지 않나. 몸은 쑥 자랐지만 아직 마음은 어린 애 같은데. 사회생활과 인생살이에는 교과서 같은 매뉴얼도 없고, 바른 길을 가도록 지도해주는 선생님도 없다. 살얼음판 같은 세상에 홀로 뚜벅뚜벅 걸어가노라면 ‘도망치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다가. 세월의 흐름을 어느 샌가 받아들이며 조금씩 성숙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삐뚤삐뚤하지만 삶의 흔적을 따라 알게 모르게 나이테가 새겨지고 있는 것이다.      


나이를 제대로 먹으려면 나이테를 바로 새기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나이에 맞게 성장하지 못해서 ‘피터팬’처럼 살거나, 나이에 맞는 대접만 바라는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분명 스스로를 돌아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 도피보다는 정면승부를 하자는 뜻이다. 나이만 먹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인 것도 불만인데, 그 나이 또래의 ‘아무나’도 되지 못하는 건 너무 슬프지 않나.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특출 나게 성공하지도 못했고, 대단히 이름을 날릴 만한 사람도 못된다. 그저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고 살고 싶은 보통의 존재일 뿐. 그 소박한 욕심을 이루어내며 살기도 빠듯한 미생. 그래서 나와 같이 나잇값을 하고 싶은 보통의 존재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내고자 한다.      


이 나이 먹도록 ‘아무나’로 살 수 있음에 감사를 알고,

‘내 나이가 어때서’ 하고 떳떳해 하며 자부심을 가지는,

이 시대의 아무개는 오늘도 하루만큼의 나이테를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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