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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 Jan 28. 2020

괴짜를 자처하는 것

얼마 전 사내에 경력 채용 공채가 있었다. 업계에서 지원한다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는데, 지원자 전원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금 놀랐다. 최종 면접까지 간 분이 경쟁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 후한 점수를 받았으나, 레퍼런스 체크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는 게 주된 불합격 사유였다.

‘이상한 애’라고 여기저기 소문이 났다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지원자는 아주 유명한 글로벌 기업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참 재미난 일이다.



‘이래서 레퍼런스 관리 똑바로 하라는 거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훈계를 하는 상사의 말엔 틀린 것 하나 없었지만 왠지 밉살스러웠다. 너는 말 좀 많이 하고, 너는 태도는 좋은데 스피드가 문제야, 등. 그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이들의 단점을 하루 종일 다 꼬집어낼 것 같은 말투로 가르치려 드는 게 못마땅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 이직도 하지, 그렇지 않으면 어디에도 오도가도 못하는 낙동강 오리 알 신세 된다고 조심하란다. 그러고선 마지막에 한다는 말이 더 가관이었다.


- ‘난 나이 들어서 어차피 못 고쳐, 생긴 대로 살아야지’


레퍼런스 체크의 중요성은 힘주어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세상은 참 좁고,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칭찬보단 나쁜 소문이 빠른 법. 같이 일한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후에 어디서든 자신을 써주리라는 걸 알지만, 어떻게 사람이 일분일초를 그렇게 계산하며 살겠나. 좋지 않은 모습도 보이고 성격의 모난 점까지도 드러내게 되는 게 오히려 당연할 거다.


그래서 어쩌면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나로 살기 보다 대놓고 뻔뻔하게 ‘생긴 대로 살자’ 식의 마인드가 가장 현명한 것일 지도 모른다. 남 흉보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도 욕을 하니, 쓸데없이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심은 포기하면 빠르다.


- ‘너 진짜 특이했어 처음에’

- ‘그나저나 네 동기는 왜 그 모양이니 도대체?’


레퍼런스의 중요성을 설파한 데에 이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이번엔 후배들의 성격을 갖고 다그쳤다. 열변을 토하는 저 인간을 내가 귀중한 점심시간에까지 보고 있어야 하나,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았다. ‘내 눈엔 네가 백배는 더 특이해’라고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제가 더 잘할게요’ 하고 깔끔한 말 한 마디로 끝맺었다.

그랬더니 그이도 맥이 빠지던지 한 마디 툭 내뱉는다는 게, 내게 쾌재를 부르게 했다.


- ‘근데 넌 참 한결같이 마이웨이다’


'근데 넌 참 한결같이 마이웨이다.'


상사가 내 팀장을 흉보든, 혹은 동기들의 업무 능력을 깔보며 디스를 하든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아서였을까.

내 성격을 갖고 ‘참 특이하다’고 이렇다 저렇다 잔소리를 늘어놓아도 남 일인 양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다혈질인 상사가 타 부서 사람과 싸우고 펄펄 날뛰어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게 ‘괴짜’처럼 보일지라도 훨씬 편했다. 온 동네 방네 나를 ‘이상한 애’라고 소문 내고 다녀도 상관없었다.

내 눈엔 매일같이 욕을 달고 사는 그쪽이 더 이상했으니까.



레이 커즈와일의 책 <특이점이 온다>에 따르면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이 머지않아 올 거라고 한다. ‘특이(特異)’라는 단어의 뜻처럼 말 그대로 상식적으로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현실이 되는 날이 곧 찾아온다는 거다. 그 날이 오면, 우리가 지금 ‘상식’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비상식’이 되고, ‘비상식’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상식’이 되는 기묘한 일도 벌어질 수 있겠다. 그렇다면 ‘특이하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남하고 좀 다르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나 싶다. 누구에게는, 또 언젠가는 그 ‘특이함’이 인정받는 ‘특이점’이 올 테니 말이다.


물론, 괴짜를 자처하는 것이 외로운 싸움이 될 수도 있다. 남한테 욕 먹는 사람으로 사는 것보단 남들하고 같이 모여서 흉보는 게 편하고, 남하고 다른 삶을 사는 것보단 남들처럼 사는 게 쉬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그런데 비상식이 상식인 무리를 따라 억지로 자신을 끼워맞출 필요는 없지 않나.


그놈의 레퍼런스 체크, 공채 면접, 동료들의 눈초리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괴짜 취급 당해도 나만 행복하면 그만인데. 스스로가 남과는 다른 성향을 가진 괴짜임을 인정하고, 남과 어울리지 않는 ‘특이함’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나면 생각보다 별것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그러니 남의 눈을 의식해 괴짜로 살아가길 두려워 말자.

괴짜이길 자처해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만큼,

내면의 나이테도 한 줄 더 생길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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