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이미지로 저장되어 있는 것들은 대체적으로 심하다 싶을 정도로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장본인으로서 내게 기억은 선물이면서도 저주이다. 너무도 상세한 기억들은 붙잡을 수 없는 과거를 선명하게 소환하지만 들추고 싶지 않은 감정들을 마구잡이로 헤집어놓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기억들이 빛에 바래지 않고 선명히 지속되기를 바라면서도 자체적으로 망각을 머릿속에 주입하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매일 줄다리기한다.
어느 날엔 누군가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내 기억을 붙잡고, 어느 날엔 누군가의 다정한 음성이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또 어느 날엔 누군가의 따스한 온기가 그날의 감정을 붙잡는다. 다시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이라 기억 안에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사무치는 것이다. 만평의 하늘과 바다를 준다 해도 맞바꿀 수 없는 것들은 분명 다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들이다.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오늘도 괴로운 시간들을 보낸다. 망각하고 싶지만 소중한 기억이라 감히 뒤돌아서지 못하는 것이다. 기억 때문에 괴롭지만 오히려 나는 망각을 더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냄비 안에 들어있던 군고구마와 그 안에 피어있던 곰팡이는 누군가의 무기력과 상실에 대한 기억을 함께한다. 망각하고 싶지만 망각이 두려운 기억이다.